일천구백사십 몇년 알제리 해변의 평범한 도시인 오랑시.의사 베르나르 리유가 진찰실앞 층계에 죽어있는 쥐 한마리를 목격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야기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02년 11월 중국 남부지방 광둥성에서 첫 발생한 사스는 5월 현재 세계 31개국에서 모두 7천4백47명의 환자가 발병,이중 5백5 전염방지대책을 펴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확산되고,캐나다의 토론토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으로 퍼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빼앗았던 페스트를 연상케 한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페스트가 처음 세계적으로 창궐한 것은 541년이다. 그러나 가장 참혹했던 것은 1346년에 발생한 '흑사병(Black Death)'으로서 5년 동안에 중동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1천3백만명, 그리고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인 3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당시보다 의료기술이나 정보가 크게 발달한 현 시대에 이렇듯 빨리 그리고 많이 발병하고,또 높은 치사율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중세의 페스트에 견줄 만하다. 사스가 발생한 이후 우리는 경제 사회 및 문화적 측면에 몇가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선 세계의 고립화 현상이다. 마치 반세계화 운동이 전세계에서 발발한 것처럼 여행은 줄어들고,각국의 도시들은 폐쇄되고 있다. 카뮤의 '페스트'에서는 오랑시 전체가 폐쇄되고,도시는 마치 감옥처럼 봉쇄됐다. 베이징의 출입이 통제되고,도시는 섬처럼 고립됐다. 이러한 고립화 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리적 공황(psychological panic)을 불러일으켜 삶의 의욕을 저하시키고 불안에 쌓이게 한다. 둘째로 우리는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목격하고 실감한다. 여행 관련 산업,레저산업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관련 종사자들이 전세계적으로 5백만명 이상 실직했고,그 피해는 점차 운송이나 국제 무역, 그리고 투자 활동에 악영향을 주어서 각국의 경제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하고 있다. 셋째로 이라크사태 때부터 시작되고 있는 국제질서의 변화가 마치 사스가 불을 붙인듯 더 급격히 변화되는 양상을 볼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협력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국제관계가 주관적이고 힘에 의한 논리로 개편되고 있다. 넷째로 사회 문화적인 규범이나 가치관이 이제는 각자의 것을 존중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요구하게 돼 그야말로 가치관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빠른 시간에 갑자기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도 심상치 않다. 북핵문제 경제문제, 그리고 무수한 사회적 갈등, 즉 노사문제,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문제,회계분식과 부정부패의 유산 등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사스에 직면한 중국 이상으로 '재앙'적인 상황에 빠져있다. 까뮈는 '페스트'에서 재앙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을 △도피 △초월(체념) 그리고 △반항의 세가지 타입으로 분류하고 있고,의사 리유를 통해서 악과 질병과 전쟁과 죽음을 동반한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하면서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 리유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주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볼대로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곳 사람이며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관련이 있다'고. 우리는 지금껏 북핵문제를 남의 일로,노사 갈등이나 교육문제를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간주하고 행동해 왔다. 밖에서 보는 한국은 매우 위험하고 불안하기만 한데,안에 있는 우리는 안보나 갈등이나 경제문제에 면역성 무반응을 보여왔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모든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생각하고 한데 뭉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특히 대통령은) 국민에게 확고하고 확실한 정책과 방향을 제시해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또 각각의 경제 주체는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고 '재앙'에 반항하는 공동노력에 참여해야 한다. 지금은 재앙의 시대며 격동의 시대다. 이 시대를 헤쳐가는 지혜를 카뮈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반항한다.고로 우리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