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에서 의류업체 위키드를 경영하는 김대원 사장(49)은 지난 4월말 텍사스주 댈러스로 날아갔다. 유명백화점인 JC페니의 공급업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약 1천3백명이 모인 행사장에 들어서며 김 사장이 깜짝 놀란 것은 좌석배치. 앨런 콰스트론 JC페니 회장 왼쪽 옆에 이 지역 유력 인사인 프로야구구단 댈러스 카우보이스 구단주가 앉았고 오른쪽 옆이 바로 자기 자리였다. '사우스 폴(South Pole)'브랜드가 '대상'을 받는다는 통보는 받았지만 대접이 이 정도로 융숭할 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만 매장이 1천개가 넘는 JC페니가 '사우스 폴'에 대상을 준 이유는 분명하다. '창조적,대중적,상업적'인 회사로 발돋움하려는 JC페니의 이미지에 가장 걸맞은 회사라는 점이다. 남극이란 뜻의 '사우스 폴'브랜드가 생긴 것은 지난 95년. 당시 한국 탐험대가 남극을 정복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혼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최근 몇 년간 불경기 속에서도 '사우스 폴'은 연평균 40∼50%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올해도 지난해(1억4천만달러)보다 45%가량 늘어난 2억달러의 매출목표를 잡아놓고 있다. 매출규모로만 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업체중 최고 수준. 단일 브랜드로는 미국 어떤 브랜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규모다. 김 사장은 "들어오는 주문을 모두 받으면 올해 매출이 2억5천만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며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매출을 조절하고 있다"고 밝힌다. 짧은 시간에 불황을 뚫고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힙합의 대중화'. 미국 동부의 소수 흑인 마니아들 사이에 유행하던 힙합 의류를 도시 백인층은 물론 히스패닉 아시안 등 젊은층도 입을 수 있도록 '트렌드 베이직'이라는 새로운 힙합 장르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했다. 오랫동안 의류 소매업을 해온 김사장 특유의 '시장 감각'이 회사를 성공으로 이끈 셈이다. '심플하고 값싸다'는 의미의 '트렌드 베이직'이란 컨셉트를 사업화하는 데는 '섬유강국 한국'의 노하우가 큰 힘이 됐다. 그는 우선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는 20여명의 감각있는 젊은 디자이너를 한국에서 데려왔다. 1년에 두 번 제품을 개발할 시기에는 한두달간 회사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밤을 새워 토론하며 상품을 디자인하기 일쑤였다. 디자인을 제품으로 만드는 곳도 대부분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공장. 베트남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중국 등 국적은 다양하지만 속내용은 모두 '메이드 바이 코리안'이다. 원재료도 국제 섬유시장속의 한인 네트워크를 통해 해결한다. 맨해튼에서 '어겐스트 올 오드스'라는 대형 의류매장을 경영하는 동생을 비롯 한인 소매체인들도 시장 흐름을 면밀히 분석해 유행이 될 만한 아이디어들을 제공해 준다. 아이디어 개발에서 판매까지 '다이내믹한 섬유 한국의 힘'들이 어우러지면서 사우스 폴의 초고속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사우스폴은 이제 매출신장보다 브랜드 고급화에 주력하고 있다. 중저가품 위주로 판매되는 월마트나 콜 등에는 아예 납품하지 않는다. "큰 회사보다는 직원들에게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김사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1백50여명의 직원들에게 최고 대우를 해 주고 매년 1백만달러씩을 장학기금을 내놓고 있는 것도 '좋은 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그런 '시작'의 일환일 뿐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