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하락세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올들어 달러가치는 유로화에 비해 10% 이상 떨어졌으며, 엔화에 대해서도 달러당 1백15엔선을 기록하는 등 주요통화에 대해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엊그제 끝난 서방 선진7개국과 러시아(G8) 재무장관회담에서 환율문제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없었던 점도 그렇고, "달러환율이 공정하게 서서히 조정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의 발언 또한 미국 정부가 '강한 달러' 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풀이돼 달러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의 달러약세는 경제현실을 반영한 측면이 없지 않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 금리를 연 1.25%까지 끌어내리는 바람에 유럽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거의 2배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의 4월 도소매 물가가 크게 떨어짐에 따라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이 경고했던 디플레이션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작년에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던 경상수지 적자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고, 재정적자도 크게 늘어나 '쌍둥이 적자'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느낌마저 든다. 이러니 내년 선거를 의식해 경제회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시 미 행정부로선 달러약세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데다 그나마도 미국경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본은 장기불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높은 실업률과 경기둔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의 수출증대를 위해 달러약세를 밀어붙임에 따라,우리를 포함해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경제권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물론 엔화강세는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수출에 상대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미국경기가 나쁜데다 달러가 주요통화에 모두 약세를 보임에 따라 큰 기대를 하긴 어렵다. 현재 원화환율은 달러당 1천1백93원대로 당장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금융불안과 잇따른 노조파업,사스확산 여파 등으로 경제 펀더멘털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황에서 달러약세가 오래 지속될 경우 채산성이 악화돼 수출이 감소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같은 사정을 감안해 우리 기업들과 정부당국은 철저히 대비해야 옳다. 특히 가뜩이나 취약한 수출경쟁력이 화물연대 파업 같은 불법적인 집단행동으로 인해 더욱 망가지는 사태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