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4:21
수정2006.04.03 14:23
지난 4월16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외곽에 있는 할리데이비슨 제1생산공장.
전ㆍ현직 노조 간부들의 정기모임이 예정된 이날 점심시간 공장을 찾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10여명의 노조 간부들이 모인 장소는 다름아닌 공장 내 구내식당.
현장 근로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 한 구석에서 노조 현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오고 가는 근로자들과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노조 간부로서의 특권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모임에서는 공장 내 의류매장의 운영 개선방안부터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 개선문제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전직 노조 간부들은 자신의 경험을 실례로 들며 생생한 현장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공장에 근무하는 3천5백여명의 근로자들 대부분은 산별 노조인 국제 제지ㆍ화학ㆍ에너지 노동자연맹(PACE)과 국제항공정비노조(IAMAW)에 소속돼 있다.
이날 논의된 안건은 양 노조 조직과 회사가 동수로 참여하는 경영협의회에 제기되고 조합원들의 투표로 최종 결정된다.
조합원 70%가 가입해 있는 다수 조직 PACE의 그렉 팔머 지부장은 "두 노조의 간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현안에 대한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의식은 갖지 않는다"며 "다수 조직의 노조 간부라는 점이 조심스러워 오히려 행동과 의견 개진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팔머 지부장은 노조 내 분파들간의 알력 다툼이 일반화돼 있는 한국 현실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노조의 존재이유인 조합원을 등한시한 채 정치세력화하는 것은 기업별 노조건, 산별 노조건 공통적인 문제점"이라며 "선출된 노조집행부에 힘을 몰아주는게 조합원들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IAMAW의 로버트 케블러 협의회장은 "소수 노조 조직이라고 해서 활동에 제약을 받지는 않는다"며 "PACE와 IAMAW는 90년 공동으로 노사화합을 선언할 만큼 상호 우호적인 발전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 조직간의 선명성 경쟁에 주력하며 한 명의 조합원이라도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한국노조의 행태와는 다른 모습이다.
팔머 지부장과 케블러 협의회장 모두 근무경력이 30년이 넘을 정도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80년대 초 혼다 야마하 등 일본 오토바이 제조업체들의 미국시장 진출로 부도위기에까지 몰렸던 회사의 '부침(浮沈)'을 직접 목격해 왔다.
해롤드 스콧 인적자원개발 부회장은 "노동운동 경험이 풍부한 노조 지도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망이 높아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노사 현안도 이들의 중재로 조합원들과 의견 일치를 쉽게 볼 수 있다"며 "노조 지도부의 리더십과 조직 장악력은 조합원들의 권익 향상은 물론 회사 발전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적인 노사 관계로 유명한 도요타도 노조집행부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경우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린 이 회사의 노조가 올해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1인당 6만엔씩 성과급을 달라'는 요구도 팽배했지만 마사모토 아즈마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집행부는 끈질긴 설득으로 조합원들의 요구를 무마시켰다.
노조가 회사에 설득당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노조집행부의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사모토 위원장은 "기본급 인상이 최우선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며 "조합원들의 일방적 요구를 일일이 들어주기 보다는 향후 국내외 경제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조합원 설득에 나섰다"고 말했다.
도쿄(일본)ㆍ밀워키(미국)=김형호ㆍ이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