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대통령 노릇, 국민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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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한숨과 토로가 가슴을 파고든다.
"이러다간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1백일이 채 안된 새 대통령은 말했다.
그래서 2박3일이라도 때 이른 휴가를 다녀올 예정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의 심사도 편할 이유는 없다.
아니 대통령이 격한 감정을 쏟아내기 한참 전부터 이미 많은 국민들의 심사는 편치 못했었다.
대통령은 지금에 와서야 이러다간 대통령 해먹기도 어렵겠다는 위기감을 말하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러다간 이 나라 국민 노릇도 못해먹을지 모르는 위기감"을 수없이 되뇌었던 터다.
책임 부재의 이상론이 광장을 채우고 개혁 명분을 내건 파괴 본능들이 대세를 결정하는 순간마다 "이러다간 제 직업에 충실하고 조용히 의무를 다하는 국민 노릇을 더는 못해먹을지도…"를 걱정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젊은 사람들의 잘못을 나무랄 줄 아는 어른에 대해 언급하는 대통령의 고충을 새삼 들어야 하는 것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열정에 포획된 젊은 선생님들이 나이스(NEIS)라는 단어조차 굳이 네이스라고 꺾어 부를 때도 그랬고 평화와 정의의 보편적 정서가 통제의 고삐에서 풀려나면서 과열된 반전 반미 구호로 연결되어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의 갈등 과정에서 대통령은 적어도 어른들의 편에 서있지는 않았다.
투명성의 이름을 내건 증오 캠페인이 급기야는 기업소유권에 도전하는 듯한 순간에도 그랬고,노동장관이 "노조는 정치"라며 사업주의 무릎을 꿇리고 노조에 승리를 안겼던 순간에도 이러다간 국민 노릇 해먹기도 어려워질 것이 겁나고 두려워 늦은 밤에 홀로 거실에 나와 소주잔을 기울인 어른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월드컵 4강에 걸맞은 남미형 갈등 국가로 내려앉기 전에 이민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지,간다면 무엇으로 호구를 연명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터에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의 고단함을 거론한대서 그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 줄을 몰랐다는 것인지,심지어 조장되기까지 하는 온갖 급진 이상론이 나라를 기어이 기능정지로 몰아간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인지,얼치기 낭만주의자들과 근시안 몽상가들이 열에 들떠 경쟁적으로 투쟁을 확대해갈 것이라는 점을 정말 몰랐다는 것인지를 오히려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화물연대는 떼를 지어 요구를 관철시킨 '떼거리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지만 그조차도 옹호하는 국무위원이 없지 않았었다.
불법으로 시작해 불법으로 종결된 전과정에서 현행법은 모조리 화석으로 되고 말았으니 그러고도 국정이 피로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
젊은 검사들과 객기를 다투면서 공권력 질서가 무력화되고,장관들을 토론회장에 끌어들여 '국정은 언제나 토론중'이 되고 말며,아마추어 운동가들로 감투를 채워 나랏일을 학예회하듯(이말은 실제로 모 현직 고위인사가 했다는 말이다) 할 때마다 '이러다간…'을 걱정해왔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전임 DJ정부가 이미 곶감 빼먹듯 다 빼먹은 경기부양책의 후유증만도 이미 산같은데 참여정부가 더 한층의 선심정책으로 나아갈 때 대통령 주변의 그누구도 이처럼 지독한 부동산 열풍이 몰아칠지를 진정 몰랐다는 것인지 궁금한 대목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늦게 깨닫는 지혜도 지혜임이 분명할 것이다.
청해대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어디가 자신의 자리인지,국정의 좌표는 어디여야 하는지 노 대통령이 깊이 깨달아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아직은 많이 있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