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대출 과정에서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전 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은 대북송금 대출외압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23일 "이 전 수석이 수차례 전화통화에서 '현대그룹이 어려워지면 대북 관계 자체가 지장을 받을 수 있다'며 현대그룹에 자금을 대출해 주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전화통화와 관련, 한 실장의 전화통화를 '지시'로 느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이씨는 '그렇지는 않다'고 답해 전화통화가 있었음을 사실상 확인했다. 이씨는 또 당시 경제관계장관 모임에 이용근 전 금감위장도 참석한 상태여서 그 문제(대출)에 대해 양해가 됐던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출금이 북한에 송금될줄은 몰랐다"는 이 전 총재의 주장과 관련, 특검 관계자는 "이기호 전 수석이 당시 이씨에게 '현대에 대한 대출은 남북관계에 매우 중요하며 이 사실은 국정원도 알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있으며 이는 대출승인 당시 이미 이씨도 대북송금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특검 관계자는 또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소환조사에서 '당시 (현대상선은) 4천억원을 대출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했다"며 "현대건설이 아닌 현대상선에 대출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이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근영 전 총재의 이런 진술이 대출 외압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여 이 전 수석을 비롯 대북송금 관련 핵심 인사들에 대한 특검팀의 사법처리 향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특검팀은 현대그룹에 대한 대출 과정이나 경위, 북송금 경위 내지 성격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상당한 수사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수석이 사실상 대출을 지시한 사실과 대출금이 북한으로 송금될 돈이라는 점을 암시했다는 정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해 수사 진전이 있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특검팀 관계자들은 정몽헌 회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북송금 실행 과정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나 있는 셈이어서 수사 대상이 고위층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으로 자신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대출 외압 의혹을 받아온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기호 전 수석 등 고위 인사들에 대한 소환이 내주부터 착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관우ㆍ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