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북한산 자락의 한쪽 꼭대기에 자리한 팔각정에 올라와 있다. 저 아래 수많은 십자가와 네온사인이 사라져버린 태양을 애도하듯 붉은 빛으로 반짝인다. 지금 내 가슴속에는 어제 내 연구실을 찾아 왔던 대학원 박사과정학생의 눈빛과 그 불확실한 생의 줄타기 모습이 각인되어 다시 살아난다. 이 물질적 계산으로 점철된 시대에 그리움을 기본 정서로 하는 문학을 공부하다니.정말로 돈 되지 않는, 그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신의 왕국'행 티켓을 사려고 하다니. 그녀는 삶에서 확실하게 손에 잡힐 수 있는 목표를 추구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에서 공부를 계속해서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예전에 갔다가 실망하고 돌아왔던 독일로 다시 가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그래, 방황이다. 얼핏 정신적 방황 속에서 마감한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빵과 포도주'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도시의 사방이 잠잠하다. 불 켜진 골목에는 침묵이 깔리고/횃불로 장식한 마차들은 덜커덩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간다./낮의 즐거움을 실컷 맛본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쉬면서,/흡족한 기분으로 곰곰이 그 날의 득과 실을 헤아린다.//(…) 혼자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잠이나 자는 편이 나을 것 같다./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궁핍한 시대에 시인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18세기 말 독일의 시대적 어둠 속에서 그 시인에겐 무엇이 빵이요 포도주였을까. 그 당시 글 쓰는 것은 정말로 돈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꼈던 지진계 같은 감응장치가 그에게 내면의 목소리를 좇아 글을 쓰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에겐 글쓰기 자체가 빵이요 포도주였던 셈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무엇을 강요할 수는 없다. 횔덜린이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시를 썼던 것은 아니었듯이.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노발리스가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애인 소피를 그리워하며 '푸른 꽃'을 썼듯이, 누구나 자신만의 '푸른 꽃'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드넓은 바다와 하늘같은 빛깔로 멀리서 반짝이는 꽃. 그 멀고도 넓은 세계를 향한 방랑, 멀리서 봤을 때는 파란 빛이지만, 직접 가서 보면 다시 무색으로 바뀌어 또 다시 저 멀리서 반짝이는 빛깔. 그 푸른빛을 향한 영원한 여행이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 여학생에게 작게 말해주었다. '방황하라'고.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유행을 좇아도 좋고, 아니면 심도 있는 삶의 문학을 좇아도 좋으니, 방황하라고.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했듯이 인생은 끊임없는 방황이니까. 파우스트의 그 극단적인 방황은 아니더라도 누구나 방황하게 마련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40이 훨씬 넘은 나의 방황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녀에겐 정말로 무엇이 빵이고 포도주가 될 수 있는지가 늘 궁금한 화두인 것이다. 이 시대에 무엇이 문학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빵과 포도주가 될 수 있을까. 고도의 정신과학을 공부한다는 문학교수들조차도 자꾸만 실용학문 쪽으로 눈을 돌리는 이 시대에. 독일의 작가 구스타프 마이링크가 소설 '골렘'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우리 인생의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넨 우리 유대인들의 성스러운 문서들이 자음으로만 씌어져 있는 것을 순전히 자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나? 각자가 자신에게만 맞는 뜻이 되도록 숨겨진 모음들을 찾아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는 말이 죽은 도그마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어." 인문학 또는 문학의 생존 방식이나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생존 여부는 이미 그 속에 답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유행 좇기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치열한 탐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자음들'을 우리 나름의 생각과 행동의 '모음들'로 채워 넣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방식이 아닌가 한다. 봄날, 어두운 밤의 옷자락 사이로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이 내 생의 모음처럼 읽힌다. 나는 다시 이 산을 내려가 저 생의 모음들을 따라 방황을 시작해야 한다. 인생의 불안한 줄타기를 계속해야 한다. 또 다른 줄타기를 하는 그 여학생의 모습을 하나의 질문으로 가슴에 간직한 채. < jjhki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