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청하기보다 설득할 때..文輝昌 <서울대 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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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컨설턴트는 첫번째 회담에서 컨설팅을 하지 않는다.
컨설팅의 궁극적 목표는 남을 설득하는 것이지만,첫 대면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하는 것이 앞선다.
이러한 견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보였던 태도는 올바른 것이었다.
겸허한 태도로 경청하는 노 대통령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상당한 친근감을 표시했다.
만약 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 절대반대로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다면 정상회담의 결과는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진지한 경청의 태도는 대화 속에 좋은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이를 두고 하버드 의과대학의 할로웰 교수는 '인간적 순간(human moment)'이라고 했다.
이를 잘 이용하면 정신과 치료,학습능력 개발,그리고 여러 종류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다 보면 친근감을 느끼고 신뢰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소득으로 '한·미간의 신뢰회복'을 꼽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에 양국 대통령이 조금 친해졌을지언정 아직 서로 신뢰할 정도는 아니다.
한·미간에 진정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다음의 두 조건이 필수적이다.
첫째,미국의 입장에 대한 확실한 이해이다.
진정한 이해가 없이 단지 이익을 위한 미국 동조는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기회주의적 태도로 비쳐져 신뢰가 더욱 손상될 수 있다.
미국은 우리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다.
회담 후 노 대통령이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부시 대통령이 다 알고 있어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던 것은 이를 말해준다.
이에 반해 우리는 미국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 안보전략의 근본적인 전환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안보에 관한 한 미국은 일방적인 노선을 지킬 것이다.
미국의 대북전략은 어떤가.
훌륭한 협상가는 첫번째 협상에서 마지막 양보 선을 보여주지 않고,상황을 고려하며 조금씩 양보한다.
이러한 협상원칙에 입각해 미국은 항상 무력사용을 포함한 모든 전략적 선택을 갖고 협상에 임한다.
전쟁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다만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 더 유효한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포커게임의 경우 한쪽은 나쁜 패를 갖고도 허세를 부리는 데,다른 쪽은 패를 다 보여 주면서 결정적인 카드를 스스로 버리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둘째,필요 이상의 반미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
물론 미국에 우리가 주장할 것은 주장해야 하겠지만,국내에서 필요 이상의 반미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더욱 증폭돼 미국언론에 보도되니 미국내 반한 감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필자의 친구인 한 미국인은 미국정부 파견으로 우리나라에서 십수년간 근무하고 돌아갔다.
한국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다.
이 미국인이 한·미정상회담 하루 전날 필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미국에서 일고 있는 반한 감정을 우려하는 내용과 함께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을 동봉했다.
월스트리트 저널,특히 사설은 부시행정부에 영향력이 크다는 설명도 부연했다.
이 신문에서는,'한국이 미국 입장을 전혀 도와주지 않으면서 자기들 입장만 주장하고 있으니,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주한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한국 국민에게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미국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내 반한 감정의 수준을 보여준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노 대통령은 여러 단체들의 불법행동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오죽하면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고 했겠는가.
그러나 대통령은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진지한 경청으로 한·미관계의 위기를 막았다면,최근 국내의 여러 불법행동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의 경청보다는 설득으로 위기를 막아야 할 것이다.
어정쩡한 타협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지나친 반미주의에 대해 확실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모처럼 잘된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희석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