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자금난으로 줄줄히 쓰러지는 중소기업들과 투자계획을 못잡는 대기업,재경부.건교부.국세청이 총동원해도 쉽게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일부 지역의 아파트값,금융위기때보다 더 나쁘다는 재래시장 경기,활력을 잃은 지방경제... 최근 우리 경제가 다시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청와대의 경제인식은 어떤가. 노무현 대통령은 26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처럼 경제문제를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으로 두 나라간의 공조가 안정돼 있고,그에 따라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도 줄어들어 안정을 찾고있는 만큼 이제는 서민문제를 챙기는 등 경제문제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다만 시위로 문제를 풀려는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원칙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회의 직후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이 국내경제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거의 한달만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1일 MBC TV '100분 토론'에 참석,"대통령이 인기를 의식해 경기에 직접 나서는 것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경기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기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경기 인식이다. "우리 경제의 불안요인도 줄어들어 안정을 찾고 있다"는 이날 노 대통령의 말은 실물·체감 경기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최근 경제의 위기조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4백조원대의 단기 부동자금이 돌아다니며 부동산시장을 흔들어 대고 있다. 정부 주도의 대책으로 겨우 고비를 넘긴 '카드대란' 역시 여전히 금융시장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부처들을 상대로 긴밀하게 '경제 챙기기'에 나선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청와대의 경제상황 인식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윤 대변인은 이날 보충 브리핑으로 진화에 나섰다. 윤 대변인은 "한·미관계로 인한 불안요인이 줄었으며,경제에 (노 대통령이) 위기의식은 가지고 있다"며 "서민들의 어려움을 챙기겠다는 점이 강조사항"이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가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 것인 만큼 일시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뒤집지 말고 소신과 대의명분을 갖고 원칙에 충실하라"고 비서진에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또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는 인식 아래 시스템을 바로잡아 나가자"고 말했다. 화급(火急)한 경제위기 조짐을 시스템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청와대측의 현실인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제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