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제대혈(탯줄혈액)을 냉동.보관했다가 본인이나 가족 등의 질병치료에 사용하는 `제대혈보관사업'에 나서는 업체가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제대혈 업체마다 보관가격, 시설, 관리기준이 다르고, 이에 대한 보건당국의 감독.인증절차는 없는 실정이어서 고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제대혈 업체의 TV광고까지 등장했고, 업체 간 비방전도 뜨거워지고 있다. 국내 제대혈 업계 현황과 문제점, 정부대책 등을 짚어본다. ■제대혈과 국내 업계 현황 제대혈에는 혈액과 면역체계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으며, 이 세포는 6개의 유전인자 가운데 3개만 맞으면 병이 있는 본인 또는 직계가족에게 이식이 가능하다. 또 이식수술 후 면역학적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 때문에 골수이식을 보완 혹은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선진국에서는 조혈모세포 이식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 백혈병, 소아암 등에서 난치성 혈액질환, 류머티즘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신생아의 태반 반출을 전후해 채취된 제대혈은 여러 검사과정을 거친 뒤 이상이없을 경우 조혈모세포만 분리해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탱크에 보관된다. 제대혈 보관 서비스는 불과 6년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됐지만 지난해에는 신생아(약 60만명)의 약 10%가 제대혈은행에 혈액을 보관한 것으로 집계될 정도로 관심을끌고 있다. 국내에서 제대혈 냉동보관사업을 하고 있는 업체는 라이프코드, 메디포스트, 히스토스템, 셀론텍, 차바이오텍, KT바이오시스, 보령바이오파마 등 7곳으로 집계되고있다. 올해에만 3개 업체가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외에도 3∼4곳의 의료벤처 및 병원들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어 국내 제대혈보관 사업체는 올해 안에 10개를 넘길 전망이다. 이들 업체들이 제시하는 제대혈 보관비용은 10∼15년에 100만∼150만원 선이다. ■업계 `이전투구' 양상 제대혈 업체들이 늘고 있지만, 제대혈 보관시스템은 각기 다르다. 메디포스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뉴욕제대혈은행이 공동개발한 제대혈 전용탱크를 들여와 제대혈을 보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라이프코드는 미국의 CBR(Cord Blood Registry)사와 제휴를 통해 애리조나주립대학 및 스탠포드대학의 저장기술과 설비를 도입, 장기 보관이 가능한 `캡슐형이중 진공포장' 기술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셀론텍은 미국 탯줄혈액이식연구회(COBLT)가 제안한 표준지침을 바탕으로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GMP)에 따라 제대혈을 보관하고 있으며, 최근 국제품질경영인증(ISO9001)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 KT바이오시스는 제대혈보관은행에 대해 미국의 임상검사 품질관리 기준인증(CAP)을 획득했으며, 국내 처음으로 ISO 9001 인증도 받았다고 밝히는 등 각기다른 인증과 보관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조직적합성항원(HLA) 검사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HLA는 제대혈에서채취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면역반응조절유전자를 말한다. 검사를 하는 업체는 "제대혈 보관시 HLA 검사를 하지 않으면 이식수술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데도 일부 업체가 HLA 검사를 하지 않고있다"고 말하는 반면 검사를 하지 않는 기업은 "본인의 제대혈을 보관했다가 본인에게 이식하기때문에 추가비용을 들여 HLA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100만~150만원에 달하는 보관비용도 분할 납부토록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어떤 곳은 일시불로만 결제하도록 해 고객들의 불만을 사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제대혈을 채취하는 병원에 주는 수고비 명목의 비용이 병원을 매수하기 위한 리베이트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난까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병원의 한 의사는 "제대혈 보관에 따른 유용성은 큰 편이지만 이를 이용한 치료기술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일부 업체들이 과장광고를 하는 측면이 없지않다"고 말했다. ■보건당국 `수수방관' 미국의 경우 97년부터 관리규정을 두고 제대혈보관 기관과 병원이 식품의약국(FDA)의 감독을 받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혈액은행협회와 국가골수기증프로그램,조혈모세포치료학회에서도 정기적인 실사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처럼 제대혈 보관사업이 업체별로 제각각이지만 보건당국에서 이를 규제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인체 이식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제대혈 보관은 탯줄혈액에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하는 것을 비롯, 냉동, 해동 등의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과 시설, 전문인력이있어야 품질유지가 가능하지만 보건당국에서는 각 업체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못하고 있다. 제대혈 보관업체 관계자도 "국내 업체 가운데 당국으로부터 객관적 기준에 의해기술력을 검증받은 곳은 없다"며 "업계에서도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대혈 보관기준 마련을 요청했지만 아직 아무런 조치도 없다"고 털어놨다. 식약청 관계자는 "최근 제대혈 업체를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알아보려고일부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며 "조만간 조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시설.관리기준을 마련할지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기자 scoop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