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검은머리 외국인'의 주가조작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번에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홍콩 투자자문사 대표 지모씨 등은 국내 증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한국인으로 홍콩에서 다수의 역외펀드를 활용,버젓이 외국인투자자로 행세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수십 개의 역외펀드 계좌를 개설해 외국인투자자로 가장한 채 코스닥 등록기업의 주가조작을 일삼았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자에게는 위탁증거금을 면제해주는 국내 증권사 해외 현지법인의 영업행태를 악용,1천7백여억원대의 대형 미수사고도 일으키는 등 국내 증권시장과 감독체계의 취약성을 파고든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인에 휘둘리는 증시취약성 악용=지모씨 등은 홍콩 증권감독기관인 SFC에 투자자문사로 등록하고 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등 조세 회피지역에 다수의 역외펀드를 설립했다. LG와 대신증권의 홍콩 현지법인에 수십 개의 계좌를 개설한 이들은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작년 6월부터 9월까지 코스닥 등록기업 O사와 K사의 주가를 조작했다. O사와 K사 주식매집 과정에서 지분율이 5%가 넘으면 지분변동 공시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그 미만으로만 보유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실제 O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이들의 시세조종 기간 동안 20%포인트 이상 급증하며 주가도 두 배로 뛰었다. 이런 수법은 "외국인이 사면 주가가 오른다"는 기대감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을 따라 매매하는 성향이 강한 국내 증시의 취약성을 십분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감독체계와 증권사 영업행태 허점=이들은 작년 12월 LG와 대신증권 홍콩법인 계좌를 통해 삼성전자 48만주 등을 매수한 뒤 결제하지 않아 1천7백여억원대의 미수사고를 일으키기도 했다. 외국인 기관투자가에게는 위탁증거금을 면제해 주는 국내 증권사 해외법인의 영업행태를 악용했던 것. 뿐만 아니라 외국인 매매에 대한 감독 당국의 허술한 감시체계를 파고든 것이다. 1천7백여억원대의 미결제 주식은 결국 LG 대신증권 등이 상품계정으로 떠안았고 이후 시장에서 주식을 처분했지만 이들 증권사는 1백억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금감원 또한 주가조작 등 외국인투자자의 법규위반 혐의가 있더라도 해당 국가 감독 당국과의 업무 협조 등 애로가 많아 치밀한 조사를 벌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선물 시장 모두 외국인 매매에 따라 크게 휘둘리는 국내 증시의 취약성 때문에 외국인을 가장한 한국인들의 주가조작 가능성은 계속 제기돼 왔다"며 "불공정거래 적발 등을 위해 해외 감독당국과의 공조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