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 처리를 놓고 '설마'했던 법정관리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채권단은 지금까지 그룹 차원의 자구책 압박용으로 청산이나 법정관리를 들먹였지만 지금은 SK측의 무성의를 비난하며 더 이상 물러설수 없다는 강경한 태세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까지 몰린 것은 돈을 꿔준 채권자이면서도 협상에서 질질 끌려다닌 채권단의 '무능'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실 책임을 나몰라라 하는 SK측의 '배째라'식 버티기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 금융계 안팎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SK측은 채권단의 요구대로 출자전환을 할 경우 이사들이 대주주인 소버린 자산운용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로 고발당할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채권단은 적절한 규모의 출자전환이 전제되지 않은 자구안은 의미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남용 하나은행 SK글로벌 대책팀장은 지난 28일 채권단 운영위원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법정관리 신청의 불가피성을 털어놨다. 채권단은 그동안 SK글로벌의 분식회계 등 부도덕한 행위로 인해 손실을 입었지만 전체 경제를 고려해 공동관리를 개시하고 회생을 추진하는 등 '성의'를 다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SK그룹이 부실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겸허한 태도는 전혀 없이 'SK글로벌이 잘못되면 채권단도 성치않을 것'이라는 투의 협박성 버티기로 일관해 회사를 살려야 겠다는 의지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채권단의 시각이다. 한 때 SK㈜가 채권단의 매출채권 1조원 출자전환 요구에 근접하는 자구안을 제시하면서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가 부풀기로 했다. SK글로벌에 대한 실사결과가 나오고 추가 분식과 해외 은닉자산 등이 발견되면서 입지가 좁아진 SK그룹은 지난 22일 SK㈜ 매출채권중 1조원을 출자전환하겠다는 내용의 구두 자구안을 내놨다. 하지만 SK그룹의 자구안이 국내 매출채권은 4천억원만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6천억원은 해외 매출채권으로 메우겠다고 통보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SK그룹의 제안은 국내 매출채권 전액(1조5천억원)을 출자전환하고 해외 매출채권 6천억원은 탕감하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크게 못미쳤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해외 매출채권 출자전환은 전혀 의미가 없는데다 가능성조차 의심이 가기 때문에 사실상 출자전환 규모는 4천억원 밖에 되지않는다고 분개했다. 더 이상 합의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채권단은 국내 매출채권을 전액 출자전환하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를 통한 청산을 강행하겠다는 통첩과 함께 자구안 시한을 27일로 못박았다. 드디어 27일이 되자 SK그룹은 SK㈜의 국내.외 매출채권 각각 4천500억원씩 모두 9천억원을 출자전환한다는 안을 들고 각 채권은행장들을 상대로 직접 설득을 시도했다. 채권은행장들은 그러나 최소 1조원 이상은 출자전환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SK㈜는 채권단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이사회 일정 사유를 들어 시한을 하루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SK㈜는 28일 오전 정식 이사회도 아닌 이사 간담회를 연뒤 전날 안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내용을 채권단에 전화로 통보했다. SK그룹은 SK㈜가 출자전환 규모를 늘릴 경우 적자로 회사존립이 위태로워지는데다 소버린 등 주주들의 반발은 물론 배임혐의로 임원들이 모두 피소당할 우려가 있다며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협상타결이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한 채권단은 운영위원회를 열어 '청산형 법정관리'를 추진키로 결정했다. 정부의 입김을 받은 산업은행 등 일부 채권단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SK측과 좀 더 협상을 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SK㈜가 '백기'를 들지 않는한 법정관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SK글로벌 법정관리에 그치지않고 재판부에 제출한 최태원 회장 석방탄원서를 철회함은 물론 형량을 가중시킬 수 있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내기로 했다. 비자금 등 최 회장의 개인 비리와 추가 분식회계 등을 수집해 오는 30일 최 회장 선고공판에 맞춰 재판부에 전달한다는 계획이다. SK그룹은 설마했던 '법정관리'를 채권단이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자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법정관리를 통한 청산이 현실화되면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지분을 모두 잃게돼 해체가 불가피한데다 채권단의 여신제한 등으로 자금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SK글로벌 정상화추진본부는 "SK글로벌을 정상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법정관리 결의를 재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 "출자전환 규모는 당사자인 SK㈜가 감내할 수 있고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협의를 계속해 나가겠다"며 "SK글로벌을 청산하는 것이 채권단과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윤정기자 merci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