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국무총리가 모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고 총리는 지난달 31일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국정의 최대현안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및 노동정책과 관련,윤덕홍 교육부총리와 권기홍 노동장관을 호되게 질책했다. 그동안 고 총리는 각종 파업사태와 교육대란등 일련의 국정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너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심지어 몸을 사린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아온 터였다. 이 때문에 이날 총리의 국무위원 질책은 일과성이 아닌 '앞으로 국정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사인'으로 해석된다. 윤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교무·학사,보건,진·입학 등 국가인권위 등에서 인권침해를 지적한 3개 영역은 삭제하고 시행'이라고 적힌 보고서를 읽었다. 이에 대해 고 총리는 즉각 "고3에게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냐.고3에 대해선 NEIS의 27개 영역을 모두 시행한다고 발표하지 않았느냐.보고서만 보면 고3에 대해서도 3개 영역을 빼겠다는 것으로 읽히지 않느냐"고 질책하고 "무슨 보고서를 이렇게 오해가 가도록 만드느냐.이런 내용은 당장 삭제하라"고 질타했다. 평소 대화와 조정을 중시하는 '행정의 달인'고건 총리의 스타일에 비추어 일반 장관도 아닌 부총리를 이처럼 직설적으로 나무란 것은 극히 이례적이어서 다른 국무위원들도 바짝 긴장했다고 한다. 고 총리는 이어 "정부의 정책에는 반드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고 윤 부총리는 제대로 답변을 못하다 "NEIS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불법파업'이라 하더라도 비폭력적일 경우엔 공권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가)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총리의 질책을 받았다. 권 장관은 "불법파업이긴 하지만 비폭력적인 형태로 진행돼온 병원파업에 대해 국가가 공권력을 투입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예를 들면서 "비폭력적 불법파업에 대해선 공권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총리는 이에 대해 "권 장관의 발언은 많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며 "권 장관 말대로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게 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출범당시 고 총리는 '대통령은 개혁,총리는 국정현안을 챙기는 확실한 역할분담형 책임총리'로서 입지를 보장받고 파워를 행사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실제론 '총리는 어디 있나'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그간 고 총리는 최소한의 역할만 해왔다. 하지만 국정혼란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서 청와대나 여권등으로부터 '제대로 챙겨달라'는 주문이 총리에게 전달됐거나 고 총리 스스로 '이제는 나설 때'라고 판단,이날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작심하고 윤 부총리와 권 노동장관을 질타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들린다. 강현철.정종호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