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출범한지 엊그제인데 국정혼란의 도가 지나치다. 대다수 보수층은 총체적인 국정난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던 사람들 중 상당수도 국정운영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 보는 상황이다. 한창 밀월 기간이어야 할 때에 너무 소외되고 불안한 정부를 보면서 '인간과 인간의 소산인 체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이 중층적으로 다가온다. 왜 때이르게 국정난맥상이 심한 것인가? 기본적인 이유는 참여정부의 코드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잘못된 코드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사회적 약자가 '가진 자'와 비견하게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약자를 부추겨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코드는 새 정부가 표방하는 참여민주주의와 '더불어 잘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당한 명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된다. '법 질서는 가진 자의 부당한 기득권을 옹호하는 기제에 불과하다'는 운동권 사고에 입각해 약자가 법과 원칙을 무시할 때에도 포용해 줌으로써 문제가 심각해졌다. 불법과 탈법을 불사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크게 일으킬수록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원리인 '대화와 타협'에 의해 보상받는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면 '모든 이익집단의 모든 이익집단에 대한 투쟁'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낳는 궁극적인 요인은 좋은 사회하부구조라는 것이 오늘날 경제학계의 지혜다. 법과 원칙의 엄정한 집행과 일관성있는 정부정책은 좋은 사회하부구조의 핵심이다. 둘째,우리 경제는 저력이 있어서 함부로 다루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 코드는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 세력 속에 뿌리깊게 형성됐다. 70년대 초의 가당찮은 유신개헌,서울의 봄을 짓밟은 80년대 초의 군사 쿠데타는 민주화세력에게 엄혹한 시련을 안겨 주었다. 맨몸으로 맞서 싸우면서 민주화 세력은 경제가 망가져서 경제성장과 정치안정을 내세우는 군사파쇼세력이 무너지기를 내심 바라마지 않았다. 80년대에 정치경제학계를 풍미한 외채망국론은 이런 심정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개발독재와 정경유착 속에서도 고도성장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는 아무리 흔들어도 말짱하고,서로 뜯어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민주화 세력의 의식에 뿌리내린 것이다. 이런 생각은 90년대 초까지는 맞았지만 이제 더 이상 맞지 않는다.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경제는 선진국의 견제와 후발국의 추격에 협공당하면서 게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1인당 소득이 1만달러 선에서 맴돌고 있다. 국내총생산 규모는 세계 12위지만 1인당 소득은 고작 54위다. 우리 기술과 사회하부구조를 업그레이드시키고 경제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가 헝클어지고 20:80의 세계화시대에 하위 80군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셋째,민주화 세력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집단간 부처간 갈등은 대통령이 직접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코드는 DJ정부 때에도 있었던 오만과 단견인데,새 정부 들어서 훨씬 더 심해졌다. 민주화운동이나 풍찬노숙(風餐露宿)을 같이 한 핵심참모와 대통령이 사회적 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모든 분야에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집단간 갈등 조정은 소관부처와 전문가들이 하게 해야 한다. 소관부처가 중첩되는 경우 경제는 경제부총리,청와대 정책실장,정책수석,대통령 경제보좌관의 네명 중 세명 이상의 합의로 최종결정하게 하는 것이 전문성과 시스템을 살리는 상책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이 바뀌어야 하듯이,변변한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참여정부의 잘못된 세코드는 바뀌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이 변해야 하고 변할 것이다. 그러나 세코드를 바꿀 만큼 제대로 변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ksahn@cau.ac.kr -------------------------------------------------------------- ◇칼럼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