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엔터테인먼트사업에서 손을 뗀 차 사장은 그럭저럭 빚을 갚고 안정을 찾아 나갔다. 그러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순간 그에게 다시 시련이 닥친다. 2002년말 개봉한 '로드무비'와 올해 4월초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가 연거푸 관객들로부터 외면 받은 것이다. 두 영화는 비평가들의 찬사속에 개봉됐다. 그래서 차 사장도 나름대로 기대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차 사장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부채는 다시 늘었다. 차 사장과 노종윤 이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월급을 삭감해 온 터였다.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나 할까요." 차 사장은 그 즈음 개봉준비에 들어간 살인의 추억에 내심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비평가들의 평론이 결코 흥행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거기다가 이 영화는 흥행장르인 조폭코미디와는 거리가 먼 스릴러였다. 80년대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란 소재는 익히 알려져 있었고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결말도 관객의 구미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초조하게 지내던 그는 개봉 열흘전에 시사회를 열게된다. 그런데 반응이 뜻밖에 좋게 나왔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5%가 '좋다'고 답했다. 흥행작들의 호응도 80%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4월 25일 개봉일.반응은 기대이상이었다. 오랜만에 30∼40대 넥타이 부대가 몰려 들었다. 관객들은 시골형사역의 송강호의 연기에 매료됐고 범인을 잡지 못한 형사들의 안타까움에 호응했다. "봉 감독은 컷의 이어짐이 좋아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합니다.그런데 그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이야기의 요체가 없어 실패했어요.그가 다시 그런 시나리오를 들고 왔을 때 이야기의 덩어리감이 있는 작품을 주문했지요.봉 감독은 그제서야 '살인의 추억'의 원작격인 김광림씨의 연극 '날 보러와요'대본을 꺼내 보이더군요." 차 사장과 봉 감독의 인연은 오래다. 우노필름시절 박기용 감독의 '모텔 선인장'을 찍을 당시 봉준호는 장준환 ('지구를 지켜라' 감독)과 조감독을 맡았다. 두 젊은 감독은 업무스타일이 다르다. "봉준호가 '아마데우스'의 노력형 살리에르라면 장준환은 천재형 모차르트"라고 차 사장은 말한다.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고 분석하는 봉 감독의 역량이 '살인의 추억'을 돋보이게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송강호는 차 사장이 시골형사역을 제안했을 때 대본을 보고 흔쾌히 응했다고 한다. 송강호는 연극배우출신 답게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으며 배역에 금세 동화됐다. 싸이더스는 '살인의 추억'으로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영화 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에 '지구를 지켜라'의 손실분을 보전해 주면 흥행수익은 3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