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중국진출 실패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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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중관춘(中關村).얼마 전 이 곳 베이징과학기술빌딩 12층에 붙어있던 '한롼(韓軟)'이라는 한국기업의 팻말이 사라졌다. 한글과컴퓨터의 중국법인이 철수한 것이다.
한컴이 35만달러를 투자해 중국 현지법인을 설립한 것은 2000년 4월.한컴은 당시 "중국의 초기 인터넷시장을 선점하고 한국벤처기업의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주력인 워드프로세서 사업도 부진할 만큼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물론 회사측은 중국사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단은 실패의 멍에를 벗기 어려울 것 같다.
1992년 한·중 수교 이래 보따리를 싼 중국진출 한국기업들이 적지 않다.
중국투자 청산을 한국수출입은행에 공식적으로 신고한 기업만 작년 말 현재 1백50여개사에 이른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를 추진할 만큼 한국의 자존심을 지켜온 간판 소프트웨어업체 한컴이 중국에서 실패한 원인은 뭘까.
우선 다국적기업의 '올림픽 경기장'으로 통하는 중국에서 '국민기업' 한컴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8년 자금난을 겪은 한컴은 국민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냉정한 경쟁 논리만이 통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새 소프트웨어를 내놓을 때 전 세계에 동시 발매한다.
한컴은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출시한 '한컴오피스 2003'의 중문판을 올 3월에 시판할 예정이었지만 아직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쟁이 될 리가 없다.
한컴 관계자도 "생명주기가 짧은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국내와 해외판매의 시차가 3개월을 넘어서는 안된다"고 시인했다.
그는 더구나 "중국에만 2백여명의 연구인력을 두고 있는 MS와 기초체력에서부터 현저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컴은 다른 투자사업에 몰두한데다,경영권 분쟁에 자주 휘말려 중국법인에 적절한 지원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물론 한컴의 중국사업 실패는 성공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실패를 교훈 삼아 중국사업의 전열을 재정비하면 3년간 들인 수업료가 아깝지만은 않을 것이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