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집권당인 사회민주당이 노동자 해고규정 완화와 실업수당 삭감을 통한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부담 경감 등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경제개혁안 '아젠다 2010'을 압도적으로 승인한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본다. 유럽경제의 우등생으로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독일경제가 지나친 노조편향 정책으로 인해 파탄지경에 몰렸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집권 이후 근로시간 단축, 사회복지 확대 등을 추진해온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마저 "경제 시스템 유지의 대가가 너무 비싸다"며 개혁안이 채택되지 않을 경우 총리직을 사임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독일경제의 침체는 보통 심각한게 아니다. 올해로 벌써 3년째 1%대 미만의 저성장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작년 4·4분기에 이어 올 1·4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바람에, 실업자수가 4백70만명을 넘었고 실업률도 11%에 육박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한달전에 비해 0.2% 떨어져 자칫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빠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그런데도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거시경제정책을 시행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금리인하는 유럽중앙은행( ECB)의 손에 달려 있고, 재정지출 확대 역시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유럽연합(EU) 재정건전화 협약 때문에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달러약세 탓에 독일경제의 주축인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는 판이다. 그러나 독일경제를 망친 근본원인이 노동시장의 경직과 복지부담 가중으로 인한 이른바 '독일병'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노동시장 유연화와 복지혜택 축소 같은 제도개혁이야말로 독일경제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특효약이라고 생각한다. 좌파인 사민당도 바로 이점을 감안해 친기업적인 '아젠다 2010'을 채택했다고 봐야 옳다. 문제는 우리경제 역시 독일과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구조조정 압력과 불확실성 심화 탓에 몇년째 기업투자가 부진한 마당에, 강성노조가 걸핏하면 불법파업을 일삼고 있으니 투자의욕이 살아날리 없다. 게다가 참여정부의 노골적인 노조편향 정책이 사회갈등을 부채질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독일의 경험을 교훈 삼아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기업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규제철폐와 제도개혁을 단행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정책혼선이 지속되면 경제악화가 심화되는 것은 물론이고,성장잠재력의 추락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