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을 얼얼하게 하는 매운 맛이 답답한 기분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걸까. 불경기 때는 칼칼하게 매운 음식이 잘 팔린다고 한다. 어쨌거나 입맛 없을 때 열무김치에 빨간 고추장을 듬뿍 넣어 참기름 좀 치고 쓱쓱 비벼먹으면 그만이다. 콩나물과 계란프라이 하나쯤 곁들이면 금상첨화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즐겨 먹는 고추장이 암 예방은 물론 다이어트에도 탁월한 효과를 낸다는 소식이다.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의 연구 결과 고춧가루도 좋지만 잘 숙성된 고추장의 암 예방 효과가 더 높았다는 것이다. 암 인자를 억제하는 건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Capsaicin)이라고 한다. 고추장은 전분과 메주가루 고춧가루 물 소금으로 만든다. 녹말에서 생긴 당의 단맛,메주콩에서 우러난 아미노산의 구수한 맛,고춧가루의 매운 맛,소금의 짠맛이 조화돼 알싸하면서도 달큰한 고추장 특유의 맛을 내는 것이다. '증보산림경제'(1766)에 만초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된 제조법에 따르면 메주가루 1말에 고춧가루 3홉 찹쌀가루 1되를 넣고 좋은 간장으로 개어서 담근다고 돼 있다. 고춧가루가 콩의 15%에 달하고,콩은 많아야 탄수화물의 20% 미만인 오늘날과 비교하면 훨씬 덜 맵게 만들어졌던 셈이다. '규합총서'(1809)에 오면 콩 1말과 쌀 2되 고춧가루 5∼7홉을 넣는다고 기록, 고춧가루와 탄수화물의 양이 점차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멥쌀과 찹쌀 고추장 외에 보리ㆍ수수ㆍ팥ㆍ고구마 고추장 등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충청도 지방에서 주로 만드는 보리고추장은 엿기름을 안쓰는 게 특징이다. 집집마다 담그던 전과 달리 지금은 거의 사먹는다. 국내의 시장 규모는 2천2백억원 정도로 해찬들과 대상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샘표식품 등 후발주자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엔 기존 고추장보다 7∼8배나 비싼 프리미엄급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에선 다이어트 효과 설에 따라 비빔밥 열풍이 일면서 대인기고,월드컵 이후 유럽쪽 수출도 급증하고 있다고 들린다. 고추장이 세계인의 소스가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걸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