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현충일이 돌아왔다. 이제 정치인들은 깜빡 잊어 버릴 뻔했던 결혼청첩장을 집어드는 기분으로 국립묘지를 찾을 것이다. 헌화 분향하고,군악대의 진혼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묵념하고,참전용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대통령의 치사를 들은 뒤 참석자들은 국립묘지를 떠날 것이다. 결혼식장에 찾아왔던 하객들이 서둘러 밥 한그릇 먹고 자리를 떠나듯이.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저 하루 놀러가는 날이다. 전국의 관광지와 위락시설에는 깔깔거리며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아파트촌에는 고맙게도 듬성듬성이나마 태극기가 내걸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는 현충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이렌 소리에 따라 1분간 묵념하는 동안이라도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국민들은 누구 덕분에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고관대작들은 누구 덕분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가? 일제시대 골수 친일파들,6·25 때 병역기피자들이 제한몸 제가족만 챙길 적에 목숨을 초개(草芥: 지푸라기)같이 버리면서 나라를 지킨 호국선열,전몰장병들 덕분이 아닌가.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10만 호국영령들,아직도 보훈병원의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5백여 6·25 참전용사들,고엽제 후유증으로 2세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는 32만 월남참전용사들,그들은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책무를 다하기 위해 싸웠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부모형제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렇다고는 하지만,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저렇게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산동네 단칸방에서 생계조차 힘들어 하고 있는 독립유공자들과 그 가족들,한달에 고작 5만원의 참전수당을 받으며 길거리 꼴불견으로 전락해 버린 6·25 참전용사들. 이분들을 이렇게 홀대하면서 유사시 국민들이 전장으로 달려가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는 예부터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더욱이 근대 한동안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서 독립유공자도 많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지극히 낮다. 혹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6·25전쟁에 참가해 전사한 고관대작들의 핏줄이 별로 없다. 중국 모택동의 아들이 한국전에 참전했고,미국 제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의 외아들이 한국전에서 전사한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또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하다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른 선열 가운데도 상류층 자제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시 말하면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고위직에,참전용사나 독립유공자 또는 그 후손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보훈정책 답보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27일은 미국의 현충일이었다. 알링턴 국립묘지,베트남 및 한국전 참전기념비 앞에서 엄숙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9·11 테러참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는 수만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그날 G8회담 참석차 프랑스를 방문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미군 전몰용사 묘역을 참배했다. "먼 훗날,아무도 여러분을 찾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미국은 결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의 현충일은 어떤 모습일까? 집집마다 태극기는 걸릴까? 눈총받을 행위를 하는 사회 지도층은 없을지,친북·반미를 외치며 "참전용사 당신들 때문에 남북한 통일이 늦어졌다"는 젊은이들의 시위는 없을지…. 부시 대통령은 "자유는 외부 위협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용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평화는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피해 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을 준비할 때 우리를 피해간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국민들이 전장으로 달려가는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상무(尙武)정신은 참전용사들이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풍토에서만 발휘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현충일 53주년 아침,나라를 지키기 위해 산 계곡과 들에서 화약연기 자욱한 가운데 분전분투하다가 유명을 달리하신 호국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sang626@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