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금융읽기] 한은 총재가 고민해야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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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장단기 금리간의 역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콜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마저 확산되고 있어 당분간 이같은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런 현상을 오랫동안 방치해 놓을 수는 없다.
이론적으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은 '단고장저'의 역수익률 곡선이 형성되면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이같은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하거나 장기금리를 끌어올려야 한다.
왜곡된 금리 구조를 고치는 게 중앙은행 본연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행에서 신규 국채 발행을 검토하거나 지난달에 이어 이달 금융통화운용위원회에서도 또 한차례 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언제까지 금리를 내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재 콜금리 4%는 테일러 준칙과 같은 한 나라의 적정금리를 산출하는 방법을 통해 평가해 보면 우리 경제여건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금리인하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장단기 금리간의 역전현상이 발생할 경우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달 금통위에서 콜금리를 더 내린다면 금융부채가 실물투자 수익률보다 상대적으로 값싸 보이는 '부채-디플레 신드롬'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어 정부의 '5·23 부동산대책' 이후 진정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투기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킬 우려도 있다.
저금리로 장기투자수단이 매력을 잃음에 따라 시중자금이 단기화되면서 머니게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헤지펀드나 단기금융상품에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이해되는 현상이다.
특히 우리처럼 금융시스템의 개혁을 추진하는 국가에서는 금리인하가 구조조정 의지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 금리인하를 구조조정의 보조수단으로 인식하는 시각이 있으나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경험을 보면 두 수단이 병행된 경우는 드물다.
시장참여자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금리를 내리더라도 정책당국의 뜻대로 소비와 설비투자가 늘어나지 않는다.
'우물에 물(돈)이 넘치면 실물경제에도 흘러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는 시각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과거 영국 핀란드 멕시코 등 금융위기를 겪은 대부분 국가에서 성급한 금리인하는 성장둔화와 물가앙등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귀결됐다. 더욱이 우리처럼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은 환경하에서는 최후의 정책수단인 '도덕적 설득(moral suasion)'을 통해 시장참여자들의 협조를 구하기기도 여의치 않은 상태다.
이럴 때 실질금리가 0%대에 진입할 정도로 금리를 낮게 가져가다 보면 정책당국이 경제주체들의 요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화 단계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과 같은 우리 경제여건에서 금리인하는 대외환경에 대한 완충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대내외 금리차가 없는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약세로 돌아설 경우 국내에 유입된 외국자본이 이탈하면서 위기감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바라는 금리인하에 따른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안정시키고 시중자금이 증시와 실물경제에 들어갈 수 있는 고리를 확보해 놓아야 한다.
단기적으로 이런 과제를 마련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특정투자수단(예 국채)에 자금이 과도하게 몰리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
경기부양 문제에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이는 정책당국자는 바로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