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신운용 사장이 1년만에 교체됐다. 물러난 사장은 작년 5월 취임 이후 운용시스템을 개편하는 등 내부체제 개혁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카드채 문제로 빚어진 손실 책임을 지고 중도하차한 것이다. 은행 계열인 모 투신사는 SK글로벌 채권을 과도하게 편입한 책임을 물어 채권본부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데 이어 사장도 이번 주총에서 교체할 계획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이처럼 주총 시즌에 돌입한 투신업계가 문책 인사로 뒤숭숭하다. 카드사 채권에 과도하게 투자함으로써 고객에게 손실을 끼치고 회사의 대외 신인도를 실추시킨 만큼 최고경영자(CEO)는 응당 책임을 져야 한다. 대주주인 증권사 은행이 자회사의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해온 책임을 묻는 것으로 투신업계에 경종을 울려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신업계 내부에선 잦은 CEO 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운용의 철학과 원칙을 세우고 이를 밀고 나가는 역할이 바로 투신사 CEO의 몫이다. 자산운용업은 무엇보다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고객의 재산을 어떤 원칙과 전략으로 불려나가겠다는 뚜렷한 철학을 세우고 이를 수년,수십년간 실천할 때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템플턴 피델리티 등 세계 유수 투신사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불행히도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투신사 CEO의 평균 임기는 1년6개월.수탁고 증대 등 실적이 시원치 않으면 통상 1년 뒤 물러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카드채 문제도 따지고 보면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풍토가 빚어낸 것이다. 한 투신사 사장은 "단기 실적에 연연해야 하는 투신사 사장이 운용철학을 논하는 것은 사치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CEO가 바뀔 때마다 축적된 원칙과 노하우는 무시되기 십상이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한국투신의 한 펀드매니저는 "전임 사장이 시스템을 새롭게 정비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다"면서 "신임 사장이 시스템과 조직을 또 어떻게 뜯어고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언제쯤 10년 이상 장수하는 투신사 CEO를 볼 수 있을까. 장진모 증권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