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래그(slag:철강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암석 성분의 찌꺼기)를 사용해 레미콘을 만드는 문제를 놓고 시멘트업계와 레미콘업계 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쌍용양회 라파즈한라 동양시멘트 등 6대 시멘트 회사들은 "슬래그 분말을 무분별하게 혼용해 콘크리트를 만들 경우 부실 건물을 양산할 수 있다"며 슬래그 분말의 생산 중단을 종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최대 레미콘업체인 유진종합개발과 유진기업은 "슬래그 분말은 지난 1월 KS규격으로 공인된 레미콘 혼화제"라며 반박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시멘트 등 지방 소재 슬래그 시멘트 전문생산 업체들이 쌍용 라파즈한라 동양 등을 가격덤핑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사태는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공급 제한은 불법행위" 유진은 "시멘트 6개사가 약속이나 한 듯 시멘트 공급 물량을 동시에 조절하고 있다"고 '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시멘트 6개사는 공급량을 4월21일부터 일제히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유진 관계자는 "최근 시멘트업계 내 갈등이 언론보도로 표출되면서 공급량이 3천5백t 안팎으로 다시 줄고 있다"며 "작년 슬래그 분말공장을 지으려다 시멘트업계의 압력으로 중도 포기한 A레미콘사 케이스가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불량 레미콘 좌시할 수 없어" 시멘트 회사들은 슬래그 분말을 섞어 만든 슬래그 시멘트 품질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쌍용양회 관계자는 "슬래그 분말을 골재 등 재료와 함께 불과 30∼40초간 믹싱해 콘크리트를 생산하는데 어떻게 믿고 시멘트를 제공하겠느냐"며 "건설업계와 건축학회도 이런 이유로 슬래그 분말의 레미콘 혼화제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양시멘트 관계자는 유진에 대한 공급 축소와 관련,"유진이 최근 공장 증설과 시설투자로 공격적 경영에 나서고 있어 하반기에 경기가 더 나빠질 경우 재무건전성이 문제될 수 있다"며 공급량 제한조치는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장기화 가능성 높아" 지난달 29일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아직까지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한 눈치다. 공정위 김치걸 공정행위과장은 8일 "경쟁제한 행위를 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라면서 "아직은 자료수집 단계여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측이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어 불공정행위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