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동아시아ㆍ오세아니아 중앙은행 총재회의(EMEAP) 참석을 계기로 현 정부가 대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과제가 가시화되면서 한국 경제의 위상강화 작업이 시급해졌다. 정부가 구상하는 '금융 허브(hub)계획'이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원화의 거래단위를 축소하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과 아벨 마테우스 전 포르투갈 중앙은행 부총재가 제안한 바 있는 '키보(Kibor)' 금리의 도입 등을 우선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Kibor 금리는 'Korea Interbank Offered Rates'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한국(좁게는 서울) 시중은행간의 금리를 가리킨다. 국제 금리지표로 통용되는 '런던은행간 금리(리보ㆍLondon Interbank Offered Rates)'를 모델로 한 구상이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모든 외환거래의 국제기준이 되는 새로운 금리지표를 개발하자는 얘기다. 국내 금융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고 한국이 아시아 지역 내 국제금융센터로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키보금리'의 도입과 같은 기초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논의 배경 =그동안 동아시아 지역 내에 속한 국가간의 금융협력을 위해 통화스와프 체결, 공동화폐 도입 등을 논의해 오는 과정에서 한국이 중간자 혹은 균형자의 위상을 강조해온 만큼 키보금리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 리보를 사용해 왔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경우 리보에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의 위험요인을 감안한 가산금리를 붙여 조달금리를 결정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었다. 그러나 올들어 유로화가 초강세를 보이고 미국의 위상이 여전히 유지되는 대신 국제금융시장에서 런던금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떨어짐에 따라 국제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도 많이 변하고 있다. 유럽지역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는 리보 뿐만 아니라 유로랜드(유로화를 사용하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내 12개국)내 시중은행간 금리인 '유리보(Euribor)'를 사용한다. 미국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는 3개월만기 재무부증권 수익률에 가산금리를 붙여 조달금리를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만큼 갈수록 국제 금융시장의 구조가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도입의 전제조건 =키보금리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점이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국내 외환시장이 아시아 외환시장을 상징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성을 띠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인식 차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특히 키보금리가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존재하는 각종 외환금리간의 체계(interest system)에 있어서 기준금리가 돼야 한다. 그래야 키보금리가 아시아 외환 및 금융시장의 상황을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전제조건을 토대로 국내 외환시장의 여건을 점검해 보면 키보금리를 당장 도입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직까지 거래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인식 면에서도 아시아 외환시장 가운데 기존의 도쿄 외환시장이나 싱가포르 외환시장에 비해 국내 외환시장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 향후 정책과제 =앞으로 키보금리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국내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부터 늘릴 수 있는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또 국내 외환시장의 인프라 면에서도 중층적(中層的)인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그 중에서 외환시장 참여자들의 능력을 배양하는 동시에 원화의 국제화에도 노력해야 한다. 특히 원화의 국제화는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동화폐 도입 과정과 조만간 출범할 준(準)IMF 체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키보금리의 도입방안은 지금 당장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하더라도 한국 금융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고 국제금융센터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키보금리를 도입하기 위한 제반 과제들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논설ㆍ전문위원 sch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