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구의 中企 '땀과 꿈'] 밤새 혼자 만들고 낮엔 세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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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은 어두컴컴했다.
금방 쥐가 나올 것 같았다.
29세의 윤상보씨는 부천 소사동에 있는 이 음침한 상가지하 30평에서 은성산업을 창업했다.
1983년 4월이었다.
그는 우선 지하실에 전등 몇 개를 더 달았다.
그리곤 서울 성수동에 있는 철공소를 찾아가 전선압출기 제작에 필요한 소재를 사왔다.
이날부터 그는 압출기 개발에 몰두했다.
얼굴에 묻은 기름때를 땀으로 닦으며 밤낮없이 5개월간 매달렸다.
그러나 기계는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갈수록 불안했다.
월급쟁이로 되돌아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설계를 고치고 또 고쳤다.
결국 그는 6개월 만에 그 좁은 공간에서 TV내선용 전선이 빠져나오는 걸 지켜볼 수 있었다.
순간 너무 기뻐 그는 혼자 공장바닥을 두들기며 눈물을 훔쳤다.
당시 그 기계는 일본기술자들조차 놀랄 만큼 성능이 앞선 것이었다.
중졸 학력의 윤 사장이 어떻게 이처럼 우수한 기계를 개발해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윤 사장의 현장경력 덕분이었다.
충북 진천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16세 때 성수동 전선공장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는 12년간 압출라인에서 일했다.
생산직 사원으로 일하면서 그는 밤마다 좁은 공간에서도 전선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개발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하실에서 압출기가 개발된 날로부터 혼자 밤에는 전선을 생산해내고 낮에는 전자회사를 찾아가 제품을 팔았다.
품질이 좋은 덕분에 제품은 예상 외로 잘 팔렸다.
그럼에도 회사를 확장하지 않았다.
85년 말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종업원 1명을 고용했다.
현재 은성산업의 종업원은 65명으로 늘었다.
공장도 부천 도당동의 3층짜리 건물로 옮겼다.
이 회사는 최근 플렉서블플래트케이블(FFC)을 개발했다.
이 케이블은 초박판 필름형태로 돼 있어 여러 신호를 한꺼번에 보낼 수 있는 것.
VCR 및 컴퓨터용 등으로 LG전자와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다.
은성산업은 현재 총매출(지난해 90억원) 중 70%를 수출한다.
미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주문이 밀려오고 있다.
은성은 드디어 세계시장에서 꿈을 펼치는 기업이 됐다.
하지만 윤 사장은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아 자랑할 게 없다"고 겸손해 한다.
아무리 자랑거리를 감추어도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금세 눈에 띄었다.
이 회사는 창업 이후 아직까지 단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제조업체가 20년간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윤 사장은 "몸으로 때우고 땀으로 메웠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경영신념을 들여다보면 무섭기 그지없다.
'뭐든 부정적으로 본다'가 그것이다.
80%의 가능성은 실패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음을 받을 상황이면 애초에 물건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 극세선(極細線)에 아주 작은 흠이 발견되자 4만m 전체를 가차없이 폐기하기도 했다.
이같은 철저함이 바로 20년간 계속 흑자를 내게 하는 열쇠가 됐다.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