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블란쳇을 두고 아름답다느니, 미인이라느니 하는 소리는 그냥 다 하는 말이다. 오히려 그런 수식은 약간 오버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멋있고 당당하다. 그게 매력이다. 그래서 약간 남성적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키가 장장 173cm나 된다. <캐롤>에서 그녀는 여자인 테레즈(루니 마라)를 사랑하고 그녀와 잔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여성성 남성성 둘 모두를 다 뛰어넘는 개념이지만 어쨌든 <캐롤>에서 블란쳇은 멋있었다.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들은 예쁘고 아름답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블란쳇의 윗세대인 메릴 스트립이 그랬고 아래 세대인 제시카 차스테인이 그렇다. 케이트 블란쳇은 특히 이 셋 중에서 독보적인데, 연기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기 때문이다. 케이트 블란쳇은 팔색조다. 이런 배우의 경우 남자 역시 몇 안 되는데 그 중 한명이 다니엘 데이 루이스이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종종 루이스가 생각이 난다. 악역이면 악역(<한나>), 어떤 때는 사랑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기도 하고(<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어떤 때는 엄청나게 지식인스럽게 보이기도 하며(<매니페스토>) 또 어떤 때는 심지어 엄청나게 강인해 보이기도 한다(<골든 에이지>). 게다가 어떤 때는 꼭 독일 나치, 아리안족 여성 같은데(<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그래서 종종 매우 정치적인 영화 속 주인공 캐릭터에도 척척 들어 맞는다(<베로니카 게린>).1969년생이니 이제 50대 중반을 넘겼고 필모그래피만 80편이 된다. 이제 그만 해도 될 만큼 여배우로서 일가를 이뤘지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 왕성함 역시 블란쳇의 특징이다. 사
재즈의 위상해넘이가 완전히 끝난 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시작됐을 무렵 해인사에 도착했습니다. 주파수를 맞춰 놓았던 라디오가 숲길에 접어들어 멈췄다가 갑자기 청명한 음악을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해인사 답사를 라디오가 축하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때의 음악은 다름 아닌 듀크 조던의 <플라이트 투 덴마크> 속 ‘에브리씽 해픈스 투 미(Everything happens to me)’였습니다. 이 곡은 제목처럼 여행의 설렘을 담았습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겠구나’ 하고 말이죠. "어서들 와"라고 환영해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이 음악을 들을 때면 덴마크 대신 합천 해인사를 떠올리게 될 것이란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가 언젠가 덴마크를 여행하게 될 때 다시 해인사를 떠올릴거야"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한 저야말로 그 이후로 듀크 조던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생각하곤 합니다. 아직 덴마크에 가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그곳을 방문한다면 레고 대신 팔만대장경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이로써 듀크 조던의 음악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과 엮이며 제게 남다른 음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반드시 장소성을 곁들이지 않더라도 재즈는 참 근사한 음악입니다. 재즈는, 단지 치과 음악이 아닙니다.[듀크 조던 - Everything Happens to Me]치과 음악원래 저희 집 아이들에게 재즈는 치과 음악에 불과했습니다. 오스카 피터슨, 키스 재릿, 빌 에반스와 같은 위대한 재즈 음악가들의 명반을 틀고 설거지하고 있으면, 당시 일곱살배기였던 막내가 종종 말을 건넸습니다. &q
1970년대 서울에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복부인’이란 말도 그때 탄생했다.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상층에 속하는 30~40대 여성들로, 복덕방을 드나들며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들였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일하는 민속학자 유승훈은 최근 펴낸 <서울 시대>에서 “광풍처럼 서울을 휩쓸고 간 복부인과 복덕방의 풍속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여진처럼 존재한다”며 “복부인을 욕하던 사람들도 복부인의 욕망을 내재화했고, 서울 사람들의 투기 심리는 보편화됐다”고 했다. 복부인의 등장은 아파트 보급과도 관련 있다. 1972년 서울 100만 가구 가운데 4%만 아파트에 살았다. 좁았고 날림 공사로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았다. 당시 이촌동에 들어선 한강맨션은 아파트도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젊은 주부들이 좋아했다. 거실, 부엌, 목욕탕, 화장실, 침실이 한 공간에 있어 이동이 편했고, 집을 관리하기도 수월했다. 그런 가운데 주택 부족, 강남 재개발 등이 겹쳐 집값이 폭등하자 투기 열풍이 불었다. 당첨만 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당시 언론은 이렇게 묘사했다. “복부인은 혼자만이 아니고 가족들을 이끌고 다녔다. 시아버지, 시동생까지 이끌고 아파트 청약 창구를 흥분해서 돌아다녔다.”입주하지 않고 프리미엄을 얹어 파는 전매가 횡행했다. 잠실 한 고층 아파트는 15회 전매됐다. 다른 아파트도 7~8회 전매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법적으로 전매는 1년간 금지됐다. 하지만 집을 등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매하는 방법으로 같은 집이 하루에도 여섯 번 사고 팔렸다. 복방이 이를 부추겼다. 가공의 인물을 매수자로 내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