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맨해튼 미드타운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록펠러센터를 둘러싼 긴 줄을 보고 놀랐다. 오전11시부터 시작되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뉴욕주)의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 사인회를 보려는 인파였다. 이날 서점측은 1시간 동안 2백50명에게 사인해 주기로 힐러리와 계약했다. 그러나 새벽 5시부터 줄을 선 1천5백여명을 돌려보낼 수 없어 오후 2시까지 연장해야 했다. 미국의 최대 서점 반스&노블은 '이 정도 인파를 모았던 것은 오페라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뿐이었다'고 설명한다. 힐러리 지역구인 뉴욕만이 아니었다. 책을 처음 판매한 이날 전국적으로 서점에 사람이 몰렸다. 판매 첫날 논픽션으로는 사상 최대 하루판매량인 20만부 이상 팔렸다는 게 출판사측의 추산.이미 찍어낸 초판(1백만부)의 20%가 눈깜짝할 사이에 소화됐다는 얘기.출판사측은 이미 3백만달러를 받고 18개국에 판권을 파는 등 해외의 인기몰이도 예감하고 있다. 힐러리 돌풍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반스&노블의 스티브 리지오 CEO는 "대통령인 남편의 섹스 스캔들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힐러리를 고난이 많은 우리시대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어 책을 산다는 설명이다. 언론도 '돌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 ABC에서 원로 여성앵커 바바라 월터스와 가진 1시간짜리 인터뷰는 1천3백만명이 시청해 미스 유니버스 중계를 압도 했다. CNN 래리킹 인터뷰 등 인기 프로들이 힐러리 인터뷰를 서두르고 있고,신문들도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가장 흥분하는 곳은 출판업계.힐러리 회고록이 이달 말 출간예정인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출판시장의 장기 침체를 끝내는 쌍두마차가 될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긴장이다. 힐러리가 대통령 출마에 관심이 없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대선전에 힐러리가 또 한차례 돌풍을 일으킬지 온 미국인들이 주시하고 있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