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은 대기업들의 투자라는 사실을 강 교수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으로 기업들을 꽁꽁 묶어놓고 어떻게 경제를 살리자는 것인지…." 12일 저녁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과 전경련 회장단간 만찬 간담회를 마친 뒤 한 재계 인사는 강 위원장을 '강 교수'로 호칭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간담회는 정부와 재계간 명확한 입장차를 확인한 자리에 불과했다. 최악의 경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열린 간담회는 포도주 건배로 시작해 3시간이 넘도록 웃는 얼굴로 진행됐지만 분위기와는 달리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날 재계 회장들의 건의는 대체로 보아 역차별의 해소와 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내용이 주류였다. 경제를 살리자면서 기업을 위축시키는 것이 대기업정책의 핵심이라고 꼬집는 소리도 적지 않았다. 모 그룹 회장은 "수출 중심인 우리 기업의 주무대는 해외이지만 시장개혁은 국내에만 관련된 것"이라고 운을 뗀 뒤 "해외에서는 그 나라 기업에 차별 당하고 국내에서는 외국 기업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게 우리 기업들"이라고 뼈있는 한마디를 했다. 다른 참석자는 LG필립스LCD와 삼성전자의 예를 들며 국내 기업의 '역차별'은 투자 확대를 위해서도 즉각 해소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위 조사의 시기적 부적합성을 문제삼는 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 참석자는 "경기 하강기에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하게 되면 여력이 없는 기업엔 엄청난 충격을 줄 수도 있다"며 "개혁정책도 좋지만 강도와 시기 조절에는 현실적인 고려가 많아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모 그룹 회장은 "도대체 부당내부거래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며 "앞으로는 자진신고 중심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공정거래법 등 대기업 정책은 고도성장기에 만든 것으로 이제는 규제 중심에서 벗어나 경쟁촉진 정책으로 바뀔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실감나는' 건의들도 강 위원장의 원칙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도 처음엔 열린 자세를 보이긴 했다. "참여정부의 원칙인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해결방안 찾기'를 위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왔으니 좋은 의견을 많이 내달라"고 말할 때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이 말이 의례적인 것이었다는 건 금방 드러났다. 그는 "올 3ㆍ4분기까지 현행 재벌정책의 방향을 확정짓고 이를 3년간 시행한 뒤 그때가서 결과를 평가, 재벌정책을 재점검하겠다"고 재벌개혁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부당내부거래 조사 시기와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도 "경기가 하강할 때 개혁을 하면 자연스럽게 산업재편성이 이뤄져 경기가 회복될 때 건강하게 다시 설 수 있다"고 '원칙'을 강조해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고 이날 만찬 간담회가 아무 소득도 없었던 건 아니다. 전경련 회장단이 예전과 달리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었던게 아니라 논쟁에 가까운 수준까지 토론을 벌였던 점이 그렇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ㆍ장경영 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