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등 SK그룹 경영진에 대한 법원의 판결중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배임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한 대목이다. 재계에서 그동안 해온 비상장 주식의 "편법" 상속.증여에 제동이 걸리게 됐기 때문이다. 재계는 비상장주식의 경우 합리적인 주가가치 산정기준이 없어 상속세법 등에 따라 주식가치를 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해 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법원이 비상장 주식의 주가산정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용인할 범위"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함에 따라 앞으로 비상장 주식의 가치산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게 일어날 전망이다. ◆비상장사 주가 산정방식 논란 서울지법은 13일 판결문에서 최 회장과 SK C&C가 워커힐호텔 주식 3백25만주(40.7%)와 SK㈜ 주식 6백46만주(5.09%)를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비상장사인 워커힐호텔 주가를 지나치게 높게 산정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SK는 당시 비상장사인 워커힐호텔의 주당 순자산가치를 3만1천1백50원으로 평가한 뒤 상속 및 증여세법에 따라 30%를 할증,주당 4만4백95원으로 산정했다. 또 SK㈜ 주식은 주식시장 거래가격(종가 1만7천원)에 20%를 할증한 주당 2만4백원으로 산정해 가격에 맞게 주식을 맞교환했다. SK측은 비상장사인 워커힐호텔 주식은 합리적인 가치 산정 기준이 없어 상속세법을 따랐다고 설명하고 있다. 법원은 그러나 이번 주식 맞교환이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 유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워커힐 주식의 적정 거래 가격에 대한 평가를 거치지 않고 과대평가해 SK C&C에 손해를 끼쳤다고 판결했다. 예컨대 워커힐호텔의 경우 SK측은 지난 99년 금융감독원에는 주당 순자산가치를 1만5천6백12원으로 공시했으나 주식교환 당시에는 3만1천1백50원으로 평가하는 등 적정한 가격 평가를 거치지 않고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임의로 변경했다고 지적했다. 또 SK㈜ 주식은 그룹 전체의 경영권과 관련돼있기 때문에 할증률이 높아야 함에도 20%만 적용,최 회장에게 유리하게 했다고 판시했다. ◆합리적 기준 논란 법원은 그러나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주당 순자산가치를 산정한 피고인들의 행동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며 거래가격 결정의 목적이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위법성이 있다"고 밝혔다. 양 주식을 검찰측 주장과 같이 주당 순자산가치로 동일하게 평가할 수는 없고 피해액 자체를 구체적으로 산정하기 어려워 최 회장 등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아니라 형법상의 배임죄를 적용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법원의 이같은 판단은 합리적인 평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상속세법 등을 원용하는 자체는 문제시될 수 없지만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비상장사 가격을 산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비상장사 주식 가치평가의 적정성 여부를 개개 사안마다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는 측면에서 법의 안정성을 해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옵션 관련 배임 및 분식 혐의 법원은 최 회장 등에 대해 JP모건과의 옵션계약 및 SK글로벌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SK증권의 손해배상과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SK글로벌 해외법인들이 옵션계약에 따른 거래를 해 손해를 봤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은 또 최 회장 등이 SK글로벌의 분식회계를 지속한 게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침해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법원은 최 회장에 실형을 선고한 데 대해 "부는 이를 소유한 자에게 자유와 권한을 부여하는 만큼 엄정한 책임도 요구하지만 피고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 주식회사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고 이를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정태웅ㆍ이관우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