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이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과열로 치닫던 부동산투기 열풍이 수그러들고 정보기술(IT)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종합주가지수 코스닥지수가 연중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열기를 뿜어내자 700, 800고지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벌어지는 강세장세를 일컫는 '서머랠리(summer rally)'라는 말도 들린다. 낙관론이 이처럼 힘을 얻는 것은 증시 여건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탁금도 소폭이나마 늘어나고 증권사 지점엔 투자문의 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남에선 큰 손이 움직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특히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 열풍은 최근 12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하면서 증시분위기를 한껏 띄우고 있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쪽 사정이 확연히 좋아진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그런데 시장 일각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관치(官治)냄새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증권업협회 투신협회 등 증권유관기관들은 최근 '시중부동자금 증시유입방안'이라는 카드를 느닷없이 내밀었다. 증권사 사장단 회의가 긴급 소집되고 증권사들은 앞다퉈 전국을 일주하는 투자설명회를 열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상장사 코스닥등록사를 선정,투자설명회를 가졌다. 증권업계 전체가 똘똘 뭉쳐 오케스트라 연주에 나선 꼴이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80, 90년대 관치 금융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당국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시중부동자금이 부동산 투기보단 증권시장쪽으로 옮겨와야 우리 경제가 좋아진다는 데 이견을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를 잡는 게 아무리 급하다 해도 정부가 개인들의 증권투자를 부추기는 것은 곤란하다. 더구나 업계를 동원해 '긴급 이벤트'를 여는 것은 유치할 뿐 아니라 무책임한 행위다. 주식투자는 적지 않은 위험을 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사 결정 또한 투자자 몫이다. 정부가 나서 권유할 영역도 아니고 더욱이 그 시기도 적절치 않다. 증시 앞날에 의문부호를 달고 있는 전문가가 여전히 많다. 최근 증시는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외국인이 끌어올리는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강한 탓이다. 이같은 강세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실물경제가 좋아져야 한다. 기업의 펀더멘털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쉽게도 실물쪽에선 어두운 시그널만 보내고 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민소득은 2년여만에 뒷걸음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가전 의류 등 모든 업종이 대대적인 바겐세일에 나서고 있다. 소비침체로 인해 쌓여만 가는 재고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임금및 단체협상 시즌에 들어간 기업은 노사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강세장.' 2003년 6월 한국 증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랠리의 기대감이 높아지는 동시에 급락할 리스크도 동시에 갖고 있다. 2개월 이상 꾸준히 상승한 최근 증시가 하락세로 급반전하면 투자자의 심리는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점에서 관치냄새가 배어있는 증권업계의 대대적인 부동자금 유치 이벤트는 분명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같은 사실을 현명한 투자자들도 잘 알 것으로 믿는다. song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