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 동결을 의결한 지난 12일,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국고채 시장에 대해 한마디했다. 최근 국고채 과열현상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하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지나치게 하락한 국고채 금리를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엄포로 받아들여졌다. 박 총재의 발언은 채권시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사상 최저치 행진을 거듭하던 국고채 금리가 전날보다 0.03%포인트 오른 것이다. 한은에선 "혹시 총재님 말씀이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까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라는 안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은은 여세를 몰아 장 마감 뒤 통안증권 2년물 발행을 확대한다는 방침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 안정을 자신했던 박 총재와 한은의 낙관론은 하루만에 물거품이 됐다. 13일 오전 잠깐 오름세를 보이던 국고채 금리가 오후 들어 다시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다. 반면 통안증권 2년물 금리는 0.04%포인트 올라 국고채와의 금리 역전현상이 되레 심화됐다. 채권시장에서는 '통안증권 2년물을 판 돈으로 국고채를 사러 간 사람들도 있다'는 비아냥까지 들려 왔다. 국고채 투기를 진정시키려던 조치가 애꿎은 통안증권 시장에 불똥을 튀긴 셈이다. 외국계 증권사 채권딜러는 "통안증권은 발행물량이 많고 종류도 다양해 단기차익을 노리는 '세력'에는 큰 매력이 없고 국고채와 서로 '대체재'가 될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시장에서는 또 "추경예산 재원으로 국고채를 활용(적자국채 발행)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했던 박 총재의 발언에도 콧방귀를 뀌었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추경 감축을 주장하는 마당에 적자 국채 발행이 가능하겠느냐는 것. 요즘 들어 한은 주변에선 전·현직 총재를 비교하는 말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말을 아낀 전철환 전 총재와 말이 앞서는 박승 현 총재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서 차이가 난다는 게 골자다. 전 전 총재는 2001년 2월 국고채 금리가 연일 급락하자 "시장이 과열됐다"는 한마디로 2주일만에 금리를 1%포인트나 뛰게 했다. 투기세력이 막대한 손해를 봤음은 물론이다. 안재석 경제부 정책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