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자영업자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뜬 아들을 잊지 못해 4천여장의 헌혈증서를 모아 백혈병 환자를 돕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재활용품 재료 도소매업체 순흥사를 운영하는 안병호씨(55)는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헌혈증서 4천여장을 모아 백혈병 등 헌혈증을 필요로 하는 환자 80여명에게 40∼50여장씩 나눠주었다. 또 백혈병에 관한 정보를 담은 사이트 '언제나 파란하늘'(cafe.daum.net/abh2362)을 지난해 10월 개설,운영중이다. '파란 하늘처럼 질병없는 세상을 소원한다'는 의미가 담긴 이 사이트는 현재 회원이 3백10여명.어려운 환자를 돕기 위해 헌혈증서를 모으고 치료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안씨가 헌혈운동에 나서게 된 것은 지난해 8월 백혈병으로 외아들 성일씨(당시 21세)를 잃고 나서부터. 아들이 고2때 백혈병 판정을 받으면서 의사가 "먼저 헌혈증부터 모으라"는 말에 그는 1주일 동안 이러저리 수소문했으나 겨우 몇 장 밖에 구하지 못했다. 대학까지 진학한 아들이 1년8개월동안 치료를 받고도 합병증으로 끝내 숨지자 같은 처지의 환자를 돕는 게 저 세상의 아들을 위로해 주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한적십자사 산하 '한마음혈액원'과 집 근처 송내전철역에서 출퇴근 시민들을 대상으로 헌혈운동을 벌였으며 일일찻집도 열었다. 또 성금 2백만원을 모아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박모양(9) 등 어린 환자 2명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안씨는 요즘 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김모씨(34·충남 천안)와 그의 아내 딸 등 가족들이 담긴 사진을 지갑 깊숙이 넣고 다닌다. 지난해 12월 김씨를 돕기 위해 육군 17사단에 1주일간이나 머무르며 수백명의 장병들로부터 헌혈을 받았기에 김씨의 쾌유를 비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서이다. 동(洞)주민자치위원이기도 한 그는 "아내와 딸 셋이서 처음에 '아빠 이젠 (아들을)잊으라'며 헌혈캠페인을 말렸지만 요즘은 치료경험담을 담은 우편물을 환자들에게 보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전철역엔 하루 수만명씩 다니는 데도 26명한테 헌혈받은 게 최고 기록"이라면서 사람들이 헌혈에 조금만 더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욱진 기자 sorina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