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이나 정부 개혁이나 마찬가지인 것은 변화와 고통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회사나 조직을 바꾸는 이들은 의욕에 불타지만 그 대상이 돼 바뀌어야 하는 사람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개혁의 주체와 객체가 생각하는 방향,속도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다. 그래서 큰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면 좋다. 실지로 바뀌어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는 수준으로 속도를 맞출 수 있어서다. 엊그제 노무현 대통령이 '정부 부처 내 개혁 주체세력 양성'을 언급했다. 외견상 '아래로부터의 개혁'에 시동을 건 것처럼 보인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자발적인 비공식 스터디그룹'을 언급하면서 형태도 구체화됐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란 1백번 양보해도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실제 있었던 예를 보자. 지난 94년 당시 IBM은 한 해 앞서 새로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루 거스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경영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3년간의 누적 손실이 50억달러에 달했고 한 때 1천50억달러까지 올라갔던 연매출도 3백20억달러로 추락했다. IBM의 깊은 잠을 깨운 젊은이들이 나타난 건 이때였다. 이 회사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던 데이비드 그로스맨이 주인공이다. 그는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중계를 보다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걸 느꼈다. IBM이 공식기술 스폰서였던 이 대회 중계화면을 인터넷에서는 다른 회사가 그대로 '퍼다' 쓰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인터넷 사업을 반대했던 임원들에 분통이 터진 그는 컴퓨터를 둘러매고 의기투합한 젊은이들과 함께 본사 3층 회의실로 쳐들어갔다. 얼마나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지를 직접 보여줬다. '이래도 옛날 식으로 있을 거냐'는 시위였다. 이런 것이 바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관료적인 IBM문화를 뜯어고친 경영자 거스너 덕분이다. 그는 '모든 일은 시장 상황에 따른다' '문제를 해결하고 동료를 돕는 사람을 찾는다' '실수가 있다 해도 너무 빨라서 일어난 실수가 돼야 한다' 등의 명확한 경영원칙을 세워 실무자들의 이런 '반란'까지 일어날 수 있도록 기업문화를 바꾸었던 것이다. 리더의 몫은 그 정도까지여야 옳다. 청와대가 추진 중인 '개혁 주체세력 양성'에는 그러나 '자발적'이란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그래서 강압적인 위로부터의 개혁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각 부처에 이미 업무혁신팀이 있는 상황에서 개혁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만들어진다면 더 큰 문제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잦다. '나를 이해하는 똑똑한 몇 명'만 있으면 회사를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장들이 의외로 많다. 자신들은 예외이고 남들은 변해야 한다는 일방통행적인 분위기가 퍼지면 일을 하는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숨고 만다. 지난 90년대 초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이 될 때 미국 언론들은 그에게 '3H'를 조심하라고 경고했었다. 부인인 힐러리와 건강보험(Health Care) 문제,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휴브리스(Hubris·오만)였다. 휴브리스는 아놀드 토인비가 자주 사용한 용어로 역사를 바꿔가는 창조적 소수들이 빠지기 쉬운 대표적 오류다. 한번 성공을 거둔 창조적 소수들이 그 성공에 자만해 자기의 능력과 방법론이 모든 것에 통하리라고 착각하는 잘못을 일컫는다. 노 대통령은 혹시 국회의원 시절,대통령 후보 시절 자신이 성공한 방법에 너무 미련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대 윤석철 교수는 휴브리스의 위험성과 관련,"창조적 소수가 휴브리스로부터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역사 속의 흥망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할 것"(경영학의 진리체계)이라고 말하고 있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