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심상치 않다. 이달 들어 원화환율이 슬금슬금 내리면서 약 4개월 만에 다시 달러당 1천1백80원대로 내려앉았다. 외환당국이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줄곧 '종가 관리' 성격의 시장 개입(달러 매수)에 나섰지만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 흐름을 거스르기 어려운 실정이다. 되레 시장개입으로 인해 외환보유액만 쌓여 1천3백억달러를 넘어섰다. 외환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이 오를 요인보다 내릴 여지가 더 많아 보인다"며 "엔화 움직임과 미국 금리인하 여부가 향후 환율 방향을 가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2개월여 만에 74원 급락 17일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천1백84원으로 전날보다 6원30전 내려앉았다. 지난 2월7일(1천1백83원80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달 초 1천2백5원에서 출발, 단 하루를 빼고 줄곧 소폭이나마 내림세가 지속됐다. 연중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4월4일(1천2백58원) 이후 2개월여 만에 74원(6%)이나 하락한 것이다. ◆ 시장에 달러가 넘친다 미국 정부가 지난달부터 '쌍둥이 적자'(재정ㆍ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풍기면서부터 원화는 계속 강세(환율 하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속에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14일 연속 주식을 2조원 가까이 순매수하면서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공급을 늘렸다. 또 지난달 말 뉴욕시장에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10억달러)을 신규 발행한 이후 국내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중ㆍ장기 외화차입에 나서고 있다. 경상수지도 5월부터 흑자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된다. 달러가 빠져 나갈 요인은 별로 없고 들어올 요인만 쌓여 있는 셈이다. ◆ 시장과 외환당국의 힘겨루기 원화환율 하락은 곧 국내 수출업체의 가격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우식 서울대 교수는 "환율이 10% 하락하면 제조업 전체 영업이익은 연간 7조∼9조원가량 감소한다"고 추정했다. 외환당국은 이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개입 강도를 서서히 높여 가는 분위기다. 시장개입 사실을 직접 시인하진 않고 있지만 급격히 불어난 외환보유액이 이를 짐작케 한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15일 현재 1천3백9억8천만달러로 집계됐다. 한달 반 동안 73억달러나 급증했다. 일본도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달러화를 집중적으로 매입, 외환보유액이 한달새 4백억달러 이상 급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 제조업협회가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난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 원화 강세 지속되나 외환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이달 말 미국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할 경우엔 엔ㆍ달러 환율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고 이로 인해 원ㆍ달러 환율의 내림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미영 삼성선물 과장은 "외환당국이 1천1백90원선 방어에 실패하면서 그동안 하락이 제한됐던 후유증까지 겹쳐 환율이 급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