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섬유산업은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도 불구, 회생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력공단인 성서공단은 물론 전통공단인 서대구공단과 3공단에서 섬유업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염색업체가 대거 입주해 있는 비산염색공단에서조차 염색공장이 문을 닫은 자리에는 섬유가 아닌 다른 업종의 기업이 들어서고 있다. 이처럼 휴ㆍ폐업이 속출하면서 올해 대구지역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섬유업의 비중은 20%대로 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밀라노 프로젝트'란 이름아래 지난 99년부터 올해말까지 5년간 대구지역 섬유산업에 투입하는 자금은 자그마치 6천8백억원에 달한다. ◆ 업체가 외면하는 지원기관 =대구 이현동에 위치한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신제품 연구개발센터. 밀라노 프로젝트의 핵심과제를 수행하는 기관인 데도 업계의 연구개발대행 요청이 없어 절반이상의 기계가 놀고 있다. 자구책으로 제품을 직접 만들어 시장에 내다팔고 있지만 적자만 커져가는 실정이다. 염색기술연구소도 상황은 마찬가지. 업계가 요청하는 제품 시험 정도만 해줄 뿐 본업인 상품화 가능한 신제품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나마 시험결과도 국제적인 공인을 받지 못해 업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 섬유관련 기관간 연계성이 전혀 없다는 점. 업계 관계자는 "섬유개발연구원에서 개발한 신제품을 염색연구소에서는 어떻게 염색하고 패션센터에서는 어떻게 제품화할 것인지 연계가 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사업 타당성 검토 부족 =산업자원부와 대구시가 지역 전통 산업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추진해왔던 밀라노 프로젝트는 경제성이나 사업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사전검토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5년간 투입된 6천8백억원의 70% 이상이 건물 장비 등 하드웨어 구입에 쓰여졌다. 들여온 고가의 각종 장비 가격이 제대로 책정됐는지에 대한 평가조차 없었다. 지난해 패션센터 관련 비리사건이 터졌을 때도 산자부는 감사원 감사를 요청하지 않아 유착 의혹을 낳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도입기계 가격이 부풀려지고 리베이트 수수가 있었다"는 등의 루머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각에선 대구경북섬유산업연합회 등 밀라노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협회의 이사장을 고령의 섬유업체 대표들이 대부분 차지하면서 일부 업체의 이해가 과도하게 반영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 뜨거운 감자 '포스트 밀라노 프로젝트'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포스트 밀라노 사업의 추진 여부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섬유업계는 이미 투자된 인프라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포스트 밀라노 프로젝트를 통해 계속 지원을 해야 한다며 향후 5년간 6천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기 전자 등 첨단산업 육성에는 4백억원밖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대구대 김재훈 교수(경제학)는 "대구시와 산자부가 섬유업 부흥에 집착한 까닭에 첨단 산업을 육성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이정인 실장은 "포스트 밀라노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발상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고 섬유단체도 국제감각을 갖춘 새로운 임원으로 교체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