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park@kgsm.kaist.ac.kr 대학총장이나 경영대학장을 우스개 말로 '인가된 걸인(乞人)'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직분 중 중요한 부분이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기금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운 짓이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점잖지 못한 구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스톡옵션으로 번 돈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한 CEO를 찾아갔다. 좋은 뜻의 일부를 우리나라의 경영리더를 키우는 데에 쓰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의 사회기부금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사용하고자 하는 뜻을 밝히시면서 학교는 불쌍한 곳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셨다. 훌륭하신 뜻을 훼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덕담을 하고 물러나왔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교육시스템이 존재했으나 현대의 대학은 중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엘리트 대학은 모두 유럽에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대학교육의 중심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옮겨가게 된 데에는 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적 힘과 신대륙으로의 이민정책이라는 열린 시스템이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역시 교육에 대한 기부 문화다. 우리나라의 서당문화가 내 자식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미국의 사회교육 전통은 자기 집안뿐 아니라 후대 전체를 위한 기부라고 하겠다. 미국 대학들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들의 재정은 아직 영세한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 대학이 앞 다퉈 발전기금을 모으고 있으나 일부 성공적인 대학조차도 전체 규모를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기업 차원의 기부가 일부 있었으나 기업경영이 투명화된 요즘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으며 개인 차원의 기부는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적다. 내로라하는 재벌들도 돌아갈 때면 후손들에게 유산을 나눠주기에 바쁜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지식경제 시대에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외국의 선진 대학교에 기대어 인재를 양성하던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나라에도 선진국 수준의 대학교가 여럿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의 분발,혁신과 함께 기부문화도 뒤따라 줘야 가능하다. 아마도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손에게 가르침의 유산을 남기려는 기부문화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