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 이렇게 살았네"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문서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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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짜리 딸에게 집 한 채를 준 아버지,처가살이하는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안부 편지,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사연….
모든 것이 자유로운 요즘 이야기가 아니라 유교의 법도가 엄존했던 조선시대 이야기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원장 장을병)이 개원 25주년을 맞아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정문연 내 장서각에서 여는 '고문서 특별전'은 이처럼 실록 등 공식적인 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시대의 생생한 생활 및 문화사를 접할 수 있는 자리다.
고문서는 국가에서 펴낸 사료나 사대부들의 연대기·문집류처럼 인쇄된 것이 아니라 필사 기록인 점이 특징.
향약을 비롯한 촌락문서와 문중서류, 일기 등의 개인생활 기록류,토지대장,호적문서 등이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지배층에 편중된 역사 연구를 바로잡고 당대의 생활 및 문화상을 전해주는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정문연이 지난 20여년간 수집 조사해 온 63만여점의 고문서류와 50만여점의 고서류 가운데 경주 손씨 등 20개 문중과 종택 종가에서 보관해온 고문서 95점을 선별해 보여준다.
특히 경주 양동마을에 오랫동안 살아온 경주 손씨 문중의 서백당(書百堂) 고문서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16세기 이전 고문서의 30%나 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이 중 27점을 엄선해 전시하는데 국보 제283호인 '통감속편'을 비롯해 조선초 경주 손씨 가문을 현창한 손소(孫昭)의 영정(보물 제1216호)과 교서 등 귀중한 사료들이 대부분이다.
전시되는 고문서 중에서는 조선시대 여성생활사를 보여주는 자료들도 주목된다.
예컨대 손소의 일곱 자녀가 공동 논의를 거쳐 재산을 분배한 내용을 기록한 화회문기(和會文記)는 17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재산 상속에서 남녀간 차별이 없었음을 알려주는 증거로 평가되고 있다.
또 충남 회덕의 은진 송씨 문중인 동춘당 송준길의 후손들이 기증한 고문서 중에는 여성생활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여성 간찰(편지글)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흥미로운 일화가 담긴 자료도 있다.
선조 29년 순령군 이경검 부부는 아홉살짜리 외동딸 효숙에게 집 한 채를 선물했다.
임진왜란 이후 훼손된 집을 수리하면서 순령군이 외동딸에게 "이 집은 네 집이다"라고 한 말을 효숙이 기억했고 순령군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내줬다는 것.
퇴계 이황은 광산 김씨 집안에 장가든 아들에게 안부를 묻고 집안 소식을 전하는 편지를 남겼다.
16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처가살이가 일반적인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이밖에 경주 양동마을의 향약안과 사돈간에 벌어진 노비소송 관련 문서,재산을 나눠 가진 분재기(分財記) 등은 옛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상과 문화를 짐작케 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