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한국병 치유 서두를때 ‥ 崔洸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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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洸 < 한국외대 교수ㆍ前 보건복지부장관 >
최근 한 모임에서 강연 도중 2백명이 넘는 청중에게 "다음의 7가지 특징을 가진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첫째, 경제정책의 기조가 평등을 중시한다.
둘째, 경쟁보다 협조를 중시한다.
셋째, 재분배 성향이 강한 사회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다.
넷째, 기업에 대한 규제가 과도하다.
다섯째, 노동시장이 매우 경직적이다.
여섯째, 교육제도가 평등지향적이다.
일곱째, 좌파 지식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이곳 저곳에서 '대한민국' '우리 나라'라는 대답이 쏟아졌다.
'정답은 한국이 아니고 독일'이라고 하자 모두들 놀라워했다.
지난 수년간 선진국들 중 독일은 성장률에서 최하위인 반면 실업률은 최상위이고, 재정적자로 신음하고 있으며, 세계 유수 기업 명단에서 독일기업의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독일경제를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유럽 경제의 병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독일병이란 말도 탄생했다.
세계적 칼럼니스트인 북홀츠는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경제정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정책'을 든 바 있다.
기적을 창출한 경제정책의 중심에 에르하르트(Erhard) 총리가 있었다.
에르하르트 총리는 전쟁 후의 폐허와 혼돈 속에서도 가격통제를 과감히 해제하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등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일련의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 결과 여타의 선진국들이 1∼2%씩 성장하는데 반해 연간 6∼7%씩 성장하는 '라인강의 기적'을 창출했다.
기적으로 칭송 받던 독일경제가 오늘날 어떻게 해서 이토록 추락하고 있는가?
독일경제 추락의 주범은 에르하르트 총리 이후 독일 정치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책노선이다.
에르하르트 총리의 친시장적 경제정책이 후임 총리들에 의해 반시장적 경제정책으로 바뀌면서 독일경제의 위기가 잉태됐고 심화됐다.
70년대 초반부터 집권한 사회민주당의 브란트와 슈미트 두 총리는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 두 총리가 이룩한 경제적인 번영을 바탕으로 독일식 자본주의 체제인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인기 영합적 반시장적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좌파 사민당 정권은 노동자의 경영참여,노사정 위원회의 설치, 평준화의 교육정책,재분배 성격의 복지정책 등으로 표현되는 각종 반시장적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독일경제는 곤두박질하고, 5백만명의 실업자가 탄생됐다.
번창하던 경제가 쇠퇴하거나, 반대로 절망의 경제가 희망의 경제로 전환한 사례는 역사상 적지 않다.
과거 강성 노조로 얻은 영국병의 영국경제는 대처 총리의 개혁으로 어느 정도 활력을 찾았다.
'화란병'으로 지칭되던 네덜란드경제는 오래 전에 친시장적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 현재 유럽에서 가장 활력있는 경제로 평가받고 있다.
개인의 일상 생활이든 국가의 정책이든,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좌파 진보 반시장적 사상이든, 우파 보수 친시장적 사상이든, 사상 그 자체로는 어느 쪽이 좋고 나쁜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각기 사상에 근거한 경제정책의 결과에 오면 역사상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좌파적 인기영합적 반시장적 사상에 근거한 경제정책이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경우는 동서고금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 정부를 시작으로 반시장적 진보사상이 정치와 경제를 압도하고 있다.
외환위기를 핑계로 70년대 유럽의 좌파식 경제정책을 그대로 베꼈던 국민의 정부를 이은 참여정부도 그 정책 기조는 반시장적이다.
'국민참여'라는 기치아래 개인보다 집단을 앞세우고,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보다는 보이는 손인 국가를 보다 강조함으로써 경제를 더욱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역사의 교훈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고 한다.
영국병 화란병 독일병에 이어 우리 경제도 이미 '한국병'에 걸렸다.
시장에 반하는 경제정책은 반드시 실패하고, 시장을 거스르는 경제는 반드시 쇠퇴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병을 제대로 진단하고 그 치유를 서두르자.
< choik01@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