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민경제에서 금융시장의 역할을 '사람의 온몸에 피를 공급하는 심장과 핏줄'에 비유한다. 그 이유는 금융시장을 통해 기업이 생산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국민경제에서 자금공급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금융시장은 서로 다른 위험과 효율성을 가진 기업에 대해 각각 최적의 조건으로 필요자금을 분배하는 기능도 하고 있다. 자금의 효과적 분배 과정을 통해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기업 및 투자자들 사이에는 필요한 정보를 시장가격을 통해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최근 겪고 있는 경제불황의 원인으로 금융시장의 위기와 불안을 탓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금융시장 배분기능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은 크게 은행을 중심으로 한 은행시장과,주식 채권 등이 거래되는 증권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경제에 있어 은행시장이 지난 수십년간 경제개발과 기업의 성쇠에 공헌한 바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식 채권 거래로 대표되는 증권시장의 대두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행태는 물론,투자자의 투자행태를 비롯한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또 최근 세계금융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선물 옵션 등 파생금융상품 시장의 확대 등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금융시장에서 은행시장과 증권시장의 상대적 비중은 사실상 뒤바뀌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시장에 참가하고 있는 기업,투자자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거래행위가 최종화되는 단계인 지급결제 과정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급결제제도는 금융거래 결과 발생하는 채권 채무 관계를 화폐적 가치의 이전을 통해 종료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총칭하는 이른바 후선업무(back office)의 핵심적 내용이다. 사실 지급결제제도는 금융시장의 중요한 하부구조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등한시되어 왔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관련 법률에서도 지급결제제도에 관한 명확한 개념 정의 및 관장 기관에 대한 규정이 불비한 상태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 한국은행에서 지급결제제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지급결제업무의 관장 기구 역할을 중앙은행이 수행하도록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행 설립 목적에 지급결제제도의 원활화를 추가하고,이를 위해 전체 지급결제제도중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지급결제제도를 지정,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준을 정하고 필요시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시정 요구권 및 자료 요청권을 갖는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명실상부한 금융시장의 총괄기능을 수행하고,모든 지급결제제도의 최종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 시행으로 한국은행의 대상기관이 은행을 벗어나 증권회사 카드회사 등 전 금융회사로 확대되기 때문에 중요 지급결제제도 및 참여 기관들이 준수해야 하는 규정제정업무 등을 한국은행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또 금융시장 비중이 은행시장에서 증권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현실과,기존 금융감독기구가 이미 통합된 상태로 특히 증권선물시장의 관리 및 감독 업무는 금융감독위원회 고유업무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증권결제업무와 관련하여 한국은행이 이 시장의 후선업무를 관장한다는 것도 무리다. 국제결제은행의 권고안에 의하면 중앙은행과 증시규제기관은 증권결제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 개발을 위해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행이 지급결제제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명확히 중앙은행 설립 목적에 반영한 것은 수긍이 가지만,금융거래가 지급결제업무를 수반한다고 해서 모든 금융회사를 한국은행의 대상기관으로 인식하는 것은 현실적인 무리가 있으므로 한국은행과 지급결제제도 관련 기관간 지급결제제도의 발전을 위한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는 등 신중한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jkhil@hanyang.ac.kr ..................................................................... ◇시론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