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지하자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발행됐던 무기명채권의 만기가 이달말 돌아오기 시작함에 따라 상환자금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기명채권에 투자한 자금은 그 성격상 대외노출을 꺼리는데다 초저금리시대가 지속되는 현 여건을 감안할 때 만기원리금이 어디로 갈지 현재로선 극히 불투명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자금시장이 불안했던 지난 2000년에도 정부 일각에서 "5년 이상의 산업금융채와 중소기업금융채를 무기명으로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이들 자금을 제도권으로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만기상환 규모도 관심 이번에 만기가 돌아오는 고용안정채권의 만기원리금 상환요청 비율은 19일 현재 전체의 10%선에 머물고 있다는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무기명채권은 만기 이후에도 채권 소멸시효 안에선 언제든지 상환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채권보유자들이 서두르지 않기 때문. 고용안정채권의 채권소멸기한은 원금 5년, 이자 2년이다. 이와 함께 만기 상환금을 받아가는 채권소지자의 신분이 국세청에 통보된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국세청은 이들 무기명채권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나 증여세 부과는 없을 것이라고 거듭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러나 '공평과세'를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의 성격을 고려하는 무기명채 소지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는게 증권사 창구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른 만기 상환자들에게 '별 탈'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에야 상환요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 삼성증권 정범식 과장은 "무기명채 투자자들에게 마땅한 대체 투자수단이 없는 상황이고 투자자의 성격상 만기일 이후 이자를 포기하는데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자금출처 조사가 없기 때문에 무기명 채권이 '뇌물'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권 소지자들이 정식 상환절차를 밟지 않고 채권소멸시효까지 다른 방식으로 유통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이들은 말했다. ◆ 자금시장 및 투신권 영향 한 투신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고용안정채권 상환을 위해 투신권에 맡겼던 운용자금을 대거 회수해 갔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발행규모가 큰 증권금융은 이미 상환재원의 유동화 작업에 돌입한 상태. 기관의 투자자금이 그만큼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증시뿐만 아니라 채권시장에도 큰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올 10월31일 만기가 돌아오는 증권금융채 원리금은 2조7천4백억원에 달한다. 증권금융은 지난 98년 채권발행으로 조달한 2조원을 현투증권에 지원했다. 현투증권은 이 자금으로 '릴리프공사채펀드'를 만들어 운용해 왔다. 증권금융에 연 6.625%의 확정 수익을 지급하는 대신 추가 수익은 한남투신 인수에 따른 손실 보전용으로 현투증권이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증권금융과 현투증권은 2조7천4백억원어치의 국공채 및 회사채 CP(기업어음) 등이 일시적으로 자금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에 대비해왔다. 증권금융 홍인기 팀장은 "10월29일 해지할 예정인 릴리프공사채펀드는 이미 상당 부분 유동성자산으로 채워 놓고 있다"며 "만기시점에 임박해 일시에 채권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상황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증금채 상환시점은 현투증권 매각과 관련 있어 정부가 검토하는 투신권 구조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