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동물들을 보면 우리가 어떤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지 그 해답을 곧 유추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동물 중에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해를 끼칠 뿐 하나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짐승이 있다. 이 세상엔 사람답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 같은 인간들'에 대해 그리스 신화는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만물의 생성을 주관하는 제우스는 어느 날 프로메테우스에게 인간과 동물을 만들어 보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런데 어찌 만들다 보니 인간보다 동물의 수가 훨씬 많았다. 이를 보고 제우스는 '짐승 수는 줄이고 사람 수를 늘려라'고 다시 명령했다. 프로메테우스는 할 수 없이 이미 만들어진 짐승중 일부를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로 인해 겉모습은 사람이지만 속마음은 짐승 같은 사람이 있게 됐다고 한다. 요즘 우리는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양심도 윤리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불량 상품이나 유해식품을 대량 유통시켜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장사꾼, 소신도 철학도 없이 이 당 저 당의 문턱을 기웃거리는 정치꾼, 연약한 여자들을 상대로 폭행을 일삼는 비겁자들이야말로 사람의 탈을 쓴 짐승들이다. 그렇지만 신문에 종종 보도되고 있듯이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게 돌아가도 소매치기나 폭력범과 용감하게 싸워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돕는가 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산업 역군이 있고,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킨 의로운 용사들이 있다. 오직 나밖에 모르는 세태에 이같은 의인(義人)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값지고 아름다운 일인가. 우리들에게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동물이기는 하지만 결코 원초적 본능에 매어 사는 동물적 존재로 떨어지지 않기를 갈망하는 존재다. 본래 인간 모두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선의가 살아 숨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요즘처럼 탈윤리의 시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있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분연히 반기를 든 임꺽정, 장길산 같은 인물에 대한 꿈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수필의 주인공 '딸깍발이'는 남산골 샌님, 깡마르고 꾀죄죄한 옷차림이 연상되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 따라서 인생의 낙오자로 볼 수 있지만, 그러나 누구보다 청렴한 선비다운 기상을 갖고 부패와 물신주의에 물들지 않은 채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양심을 속여 재산을 많이 모았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결코 인생의 승리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 보다는 오히려 비록 가진 것이 없더라도 자존적 신념을 갖고 살아간 딸깍발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청되는 인물의 한 패러다임으로 평가돼야 한다.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나 이봉주, 3ㆍ15 부정선거 규탄 시위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김주열 같은 사람들은 모두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영웅은 국위를 선양하는 운동선수나 예술가 또는 용감한 투사도 있어야겠지만, 인간으로서의 신의나 품위를 최고 가치로 삼는 정신주의자,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제 직분에 충실히 매진하는 사람, 세론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고 옳은 일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 그래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으며, 인간다운 삶을 실천함으로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몰라서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용서의 아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과오는 용서될 수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두터운 가면을 쓴 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거나,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李尙祐 < 명지대 교수ㆍ문예창작학 sangwo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