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나노日本'이 말하는 것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나노(Nano) 일본'이 '정보기술(IT) 미국'에 회심의 반격을 가하려는 것인가.
'정부는 나노기술에 미국과 유럽연합(EU)보다 많은 예산을 편성했고,기업들은 나노테크 비즈니스 협의회를 만들었다.' '일부 나노기술에서는 승기를 잡았다.' 10억분의 1m의 세계를 다룬다는 나노기술에 대해 최근 일본경제신문이 전한 일본 얘기다.
10년이 넘는 장기 불황에도 일본경제가 그나마 버티는 힘이 기술력에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90년대 들어 미국과 일본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이 IT라고 전제한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지난 98년 2월10일이 떠오른다.
워싱턴DC와 키브리지(Key Bridge)라는 다리 하나 거리에 있는 버지니아주 한 호텔에서 조용한 워크숍이 열렸다.
주제는 세계 나노기술 동향과 평가,주최는 로욜라대 세계기술평가센터(WTEC).주제도 주최 기관도 당시에는 낯설기만 했다.
워크숍이 중요했다는 것을 짐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참가자들 때문이었다.
국립과학재단(NSF) 상무부(DOC) 해군연구소(ONR) 공군과학연구소(AFORSR)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 국립보건연구원(NIH) 항공우주국(NASA) 에너지부(DOE) 등.워크숍을 지원한 당사자들인 이 기관들만으로도 나노기술에 대한 미국의 인식과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읽을 수 있었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Key Bridge 다리 이름이 그날 따라 새삼스러웠던 것은 물론이다.
미국 평가단의 결론은 간단했다.
미국 일본 EU가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분야는 일본이 앞선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나노기술 예산도 일본이 미국보다 많다고 했다.
그 때도 필자는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일본이 나노기술로 미국에 반격하려는 것 같다고.차이라면 당시는 미국이 평가한 것이고,5년 후 지금은 일본이 확인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실제 미국과 EU를 능가하는 9백70억엔을 나노기술 예산으로 편성했다.
히타치제작소 마쓰시타전기 미쓰비시상사 등이 나선 나노테크 비즈니스 협의회는 나노와 바이오가 융합된 나노바이오기술,그리고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나노디바이스(미소장치) 등에서 미국과 EU를 앞섰다고 판단한다.
초소형 기억장치(IT),약물전달 시스템(의료ㆍ바이오),초고감도 환경센서(환경),입자를 극소화한 고강도 철(소재),초미립자 측정기술(계측ㆍ가공) 등 5개 분야가 개발 대상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나노기술을 두고 기술이냐 산업이냐는 논쟁도 있다.
하지만 5개 분야만 보더라도 이 기술이 기존 주력산업의 진화 내지 도약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논쟁 자체가 정말 쓸데없다.
나노기술은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나노일본이 미국에 반격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 포트폴리오 재구성이나 재탄생으로 경쟁력을 한층 올린다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야말로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이 나노시대에는 핵심 장비나 부품 소재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면 특히 그렇다.
2003년 일본 통상백서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동아시아 경제를 '주도'하자고 했고,2003년 일본 제조업백서는 동아시아 시장 '공략'을 강조했다.
주도니 공략이니 하는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하기 힘든 용어들임이 분명하다.
우리도 나노기술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왠지 공허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존 주력산업 발전 따로,나노기술 발전 따로'식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주력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이 기술혁신은 고사하고 인력문제에,노사문제에,규제문제에 치여 에너지를 다 소비할 판이라서 그런 걸까.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