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파업 협상에서 정부가 법과 원칙을 어긴 게 무엇인지 여러분이 한 번 얘기해 보십시오." 23일 오전 재정경제부 6층 브리핑룸에는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과 평소보다 한 톤 높은 격앙된 목소리는 기자들을 순간 당황케 했다. 노조의 극한투쟁에 정부가 나서서 굴복한 것 아니냐는 이날 아침 주요 언론의 보도 논조가 급히 마련된 부총리 브리핑의 주제였다. 김 부총리는 '은행 전산망 마비'라는 초유의 위기를 앞둔 상태에서 정부의 파업 중재 역할에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불법 파업은 엄격하게 대처해야 하지만 정부가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금융시장이 마비되도록 내버려둔다면 언론이 박수쳤겠습니까." 물론 아닐 것이다. 불법 파업에 정부가 팔짱만 낀 채 '모르쇠'하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어느 관계자의 말처럼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개입 여부는 어려운 순열 조합을 푸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도 이해할 만하다. 언론이 그런 어려움을 모르고 정부를 '공격'했다고 오해한다면 참으로 유감이다. 풍선처럼 허공에 두루뭉술하게 떠있는 듯한 '법과 원칙'의 '말 따로,실천 따로'를 짚고자 했던 것이다. '법과 원칙'은 엄정(嚴正)함이 생명이다. 수많은 꼬리표,유예 조건과 상황 변수를 둔 법과 원칙은 그 효력을 상실하기 십상일 뿐더러 어느 누구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조 지휘부와의 협상테이블에 경제수장은 물론 중앙 경제부처의 실·국장들이 총출동하는 작금의 사태.어떻게 되든 일단 무마하고 보자는 식의 곶감 빼주기 협상 전략은 집단행동을 부추기고 노조의 기대심리만 높이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불법 파업마저도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라는 김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대형 '하투(夏鬪)'를 줄줄이 예고하고 있는 노조들의 가장 중요한 행동지침이 될 것이란 게 기자만의 순진한 생각일까. 돌아서 웃는 노조와 돌아서자마자 해명하기 급급한 정부.올해 정부와 노조의 손익계산 결과가 자명해 보인다. 이정호 경제부 정책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