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리산 종주 .. 이채욱 < GE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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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lee@geahk.ge.com
얼마 전 연휴를 이용해 2박3일 지리산 종주에 도전했다.
이번에 못가면 영영 기회가 없을 거라는 친구들의 강권에 급히 동행을 결심하고 간소하게 떠났다.
구례역에 도착해 노고단(1천5백7m)을 거쳐 뱀사골에 여장을 풀 때까지는 '별 것 아니구나' 싶었다.
그러나 12시간의 산행이 예정된 이튿날 3시간이 채 안돼 다리에 쥐가 나서 주저앉고 말았다.
순간 당혹감과 함께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산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짐을 받아주는 친구,끌어주는 친구가 있었던 데다 '힘든 공부에 도전하는 둘째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해보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마침내 정상인 천왕봉에 도달했고 삼대가 선행을 해야 겨우 볼까말까 한다는 해돋이 장관까지 마주할 수 있는 행운을 맛보았다.
천왕봉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산봉우리들은 각기 제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을 지키고 서 있었다.
서열 다툼도 없고 시끄러움이나 싸움도 없어 보였다.
마치 용기와 지혜 있는 자들은 다 오라며 손짓하는 것같았다.
어떻게 보면 둘째날 세시간만에 주저앉은 것은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출발부터 무모했고 따라서 실패가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첫째,처음부터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남들의 강권에 의해 따라 나선 것이었다.
남이 가능하다니까 나도 가능하리라는 맹목적 낙관이었다.
둘째,준비성이 없었다.
말로만 듣던 지리산 종주,40km가 넘는 험한 산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시작했다.
셋째,산을 얕잡아 보는 우를 범했다.
해발 1천9백15m라는 산을 사전지식없이 떠났다.
넷째,나 자신을 몰랐다.
10여년 전 친구와 대청봉(1천7백50m)을 등반한 뒤 오랜 해외생활 중 한번도 산에 오르지 않은 50대 중반에 준비운동도 하지 않은 자신을 과신했다.
경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장조사는 철저했는지,우리 회사의 강점과 핵심역량은 무엇인지,충분한 사전준비 및 유동성 확보는 돼 있는지,타사(경쟁사)의 성공 실패사례 분석은 해봤는지,6시그마 프로세스에 의한 사전 시뮬레이션은 해봤는지,우발사태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하진 않은지 등을 잘 따져보지 않으면 도중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산행에선 다행히 옆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경영에선 주위의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준비와 점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지리산 종주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