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외국인학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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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 밖이냐,기지 안이냐.'
서울시가 시내 10여개의 외국인학교가 들어설 종합 외국인학교 타운의 위치를 둘러싸고 끙끙 앓고 있다.
타운이 들어설만한 곳은 용산 미군기지 안뿐인데 이는 이명박 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용산기지 공원화와 배치되는 까닭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서울시는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를 위해 용산 미군기지 이전 후 기지내 7천5백평 규모의 학교시설을 종합 외국인학교로 활용케 해달라'는 산업자원부 등 중앙 정부의 요청을 수용할 뜻을 비췄다.
하지만 이 시장이 지난 2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산 미군기지 이전 후 기지내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공원화할 계획"이라며 "용산기지 부근에 학교시설이 있는 만큼 이 시설을 외국인학교 부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후 상황은 바뀌었다.
종합 외국인학교를 설립하겠지만 미군기지 이전부지가 아니라 기지 부근에 있는 수도여고 이전터 3천평을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이 시장의 발언에 중앙 정부는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10여개 외국인학교를 소화할 만한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평 이상의 부지가 필요한데 용산 기지내를 제외하곤 서울시내에서 이만한 땅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부터 수도여고 이전부지에 국제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해온 서울시교육청도 외국인학교 설립 계획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엊그제 시 실무자급에서 전화를 걸어와 국제고등학교의 추진 상황을 타진해 보더니 마치 그 자리가 외국인학교로 내정된 것처럼 발표하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청계천 복원공사를 불과 며칠 앞두고 중앙 정부의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서 정부의 요청을 모른 체할수 없는 서울시의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 용산 기지 부지를 시민의 품에 돌려야 한다는 국민들의 소망도 외면해선 안될 일이다.
하지만 당장의 불똥을 피하려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공언하는 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게 아닐까.
임상택 사회부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