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發 디플레' 공포…유럽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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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제의 기관차 독일 경제가 디플레이션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독일발(發) 디플레가 유럽 전역으로 전염병처럼 번져 이 지역에 장기 침체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에른스트 벨테케 총재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독일 경제가 '치명적인(pernicious)'이지는 않더라도 '완화된(mild)' 형태의 디플레를 겪을 수 있다"며 공개 석상에서는 처음으로 디플레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와 관련,월스트리트저널은 "유럽 경제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는 독일 경제가 디플레에 빠진다면 주변국들에도 엄청난 부정적 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끝없는 물가 하락 =독일의 소비자 물가는 최근 2개월 연속으로 0.2%와 0.3%씩 떨어졌다.
지난해 1%에도 못미치는 물가 상승률을 경험한 독일에서는 올들어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이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상품가격 하락이 무조건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추가적인 물가 하락을 예상한 소비자들은 상품 구입을 꺼리고,그 결과 '기업도산'과 '실업률 급증(5월 11.1%)'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파산하는 기업이 늘면서 '금융산업 수익성 악화→시중 자금경색→기업도산' 등 전형적인 디플레 악순환이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 구조개혁 미뤄 장기침체 수렁으로 =무역 의존도가 60%에 육박하는 개방형 경제구조를 가진 독일이 부진의 늪을 헤매고 있는 직접적 이유는 미국의 경기 불황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세계의 제조공장' 중국의 값싼 상품들이 독일로 밀려들면서 디플레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독일이 경제구조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만한 사회보장제도가 통일 이후 동독지역에 대한 지원으로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선진국중에서 가장 낮아 신규 고용창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 해결책 없어 고심 =세계 경제의 침체로 해외 수요가 감소, 불황을 겪고 있다면 해법은 내수 진작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유로존 안전성장협약에 따라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에서 묶어야 하는 독일은 재정지출 확대를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올해 독일의 재정적자가 GDP 대비 4%에 달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기 부양을 위한 금융정책도 적절한 시점에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로존 12개국을 총괄해야 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이 독일 경제만을 위해 금리를 계속해서 내려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좌파노선을 걸어온 집권 사회민주당(SPD)이 이달초 친기업 정책으로 급선회, 근로자해고규정 완화와 실업수당 삭감 등을 담은 '아젠다 2010'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자구책의 일환이다.
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