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여름투쟁(하투)에 예상치 못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강경투쟁을 주도해온 민주노총을 강력히 뒷받침해온 강성 거대노조의 대표격인 현대자동차 노조가 조합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데 실패함으로써 향후 노사기상도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24일 쟁의 찬반투표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만해도 '하투의 태풍의 눈'으로 간주되었던 현대차 노조는 파업찬반투표 결과 노조사상 가장 낮은 54.8%의 찬성률(전체 조합원대비)을 기록했다. 작년 월드컵 기간에 진행된 파업때도 전체 조합원 3만8천여명중 3만4천6백여명(91.6%)이 투표에 참가해 2만7천4백여명이 쟁의에 찬성표를 던져 72.4%의 찬성률을 자랑(?)했던 노조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번 투표결과는 강성집행부가 비정규직 조직화와 주5일 근무제 등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정치적인 투쟁사안을 너무 많이 들고나온데 대해 상당수 조합원들이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민노총의 지도에 따라 금속노조 소속으로 '산별전환'을 시도하는 노조지도부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도 해석된다. 이번 현대차 파업투표 결과는 노동계 '하투'의 기류를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당장 27일 실시되는 현대차 노조의 산별노조(금속노조) 전환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 상급단체인 민노총의 방침에 따라 산별전환을 할 경우 향후 현대차의 노사협상은 근로조건이 현대차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다수의 다른 금속노조 소속 기업들에 의해 주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은 현재 선진국 수준의 임금조건 등을 획득한 현대차에는 '좋을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챈 현대차 조합원들이 이번 파업찬반투표를 통해 지도부에 '비토 사인'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노조 집행부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 집행부는 "지난 2001년 현대중공업 등의 산별노조 전환이 실패할 당시와 아주 흡사하게 '산별전환시 대기업노조가 손해본다'는 식의 외부 방해책동이 있다"며 조합원 설득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투표결과는 이달 말까지 전국금속산업연맹 산하 12개 사업장 6만여명의 노조가 추진키로 한 산별노조 전환에도 연쇄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에선 현대차가 극심한 내수부진에 허덕이고 있는데다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도 조합원들이 강성으로 치닫는 것을 망성이게 만든게 사실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화물 지하철 등 대형사업장들의 릴레이 파업도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를 약화시켰다. 이에따라 현대차 파업이 민주노총이 계획한대로 내달 2일을 전후한 총파업 스케줄에 맞춰 1주일 이상 지속될 가능성은 불투명해졌다. 노동계 한 전문가는 "사측이 노조의 변화조짐에 부응해 임금인상을 적정수준에서 수용할 경우 현대차의 강성투쟁은 예상외로 빨리 수그러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면서 "이 경우 전체 '하투'의 투쟁수위도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최대 복병은 임박한 새 노조위원장 선거를 염두에 둔 현장 노동조직간 노노(勞勞) 갈등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단체행동 움직임 등이다. 이 두가지 갈등요인이 동시 폭발할 경우 이번 '하투'는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