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산업의 쌀이오.쌀을 만들어야 밥을 지어 먹지 않겠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제철 철학'이다. 1958년 이승만 정부에 의해 시작됐던 종합제철 건설계획은 62년 박정희 혁명정부에까지 이어졌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정치적 혼란과 건설자금 부족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67년 종합제철소 설립을 위한 대한국제차관단을 결성하고 자신의 제철철학을 완성해줄 인물로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었던 박태준(사진)씨를 선택했다. 73년 6월 포항제철의 첫번째 용광로가 가동된 지 30년이 지났다. 히스토리채널은 한국 제철산업 30년을 돌아보는 2부작 다큐멘터리 '모래펄에 일군 철강신화'(26일 밤 12시,7월3일 오후 7시)를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을 비롯해 일본의 나카소네 전 총리,포항제철의 전직 간부 등의 증언을 통해 30년 전 포항 영일만 황무지 위에 세계적인 제철소를 일궈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 제철소 건립은 공장건설 자금을 대기로 했던 대한국제차관단이 차관 제공을 거절하고 비판적인 여론이 우세해지자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박 회장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37년의 보상으로 받기로 한 '대일 청구권 자금'을 전용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와이 구상'이라고도 불리는 이 계획이 성공하자 이제 제철소 건설계획은 '실패 불가능한 사업'이 됐다. 일제에 희생당한 선열의 피로 건설한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다. 박 회장 이하 모든 직원들은 "실패하면 좌향좌하여 영일만에 빠져 죽어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좌향좌 정신'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73년 6월9일 오전 7시30분 포항제철 첫번째 용광로를 가동시켰다. 한국의 '철강신화'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