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독일에 몇년씩 살면서 이들 나라가 우리나라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이 두 나라에는 상과 벌이 공존하지만 우리나라는 상만 있고 벌이 없거나 매우 약한 듯하다. 미국은 경제적 처벌,독일은 사회적 처벌이 강력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없다. 미국에서 법을 어기고 남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직접손실은 물론 간접손실,위자료,징벌적 손해배상 등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한다. 예컨대 환자를 잘못 치료한 의사는 수백만달러 내지 수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환자에게 해야 한다. 첫번째 실수는 사실상 마지막 실수가 되고 의사는 재기하기 어렵다. 한편 독일의 경우 미국과 같은 금전적 처벌 대신 손가락질 형태의 사회적 처벌이 강하다. 질서를 어지럽히고 남에게 피해를 준 자는 사회적으로 영원히 매장된다. 중세 길드의 회원이 불량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길드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길드 회원의 상징인 귀고리를 뜯어내 '반쪽 귀'로 여생을 살아야 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미국식 경제적 처벌이나,독일식 사회적 처벌이 없는 나라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약간의 경제적 배상 또는 일시적 손가락질만 당하면 그뿐이다. 존립에 영향을 줄 정도의 금전적 손실이나 영원한 따돌림은 없다. 범법행위를 한 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관용과 온정주의가 국제수준 이상인 우리나라에서 부활은 예수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상만 있고 벌이 없는 경우 사람들은 정상 수준 이상의 적극성과 모험성을 추구하게 된다. 잘되면 내 것,못되면 남의 것이 되는 상벌구조는 당연히 과감성과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다. 특히 주변의 성공사례는 다른 사람들의 그런 행동을 자극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그렇게 성공해 왔지만,또 그로 인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경영학 교과서 제1장 제1절은,기업의 주인은 주주이고 기업의 목표는 주주가치(주가)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규정한다. 경영자는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주가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한다. 회사가 망하면 주주는 투자자금을 완전히 잃지만,근로자는 노동능력이 아닌 취업기회를 잠시 잃게 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근로자의 손실 축소와 아울러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저항감을 줄여준다. 한편 독일의 경우 기업은 주주와 근로자가 공동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항상 만약에 대비하는 독일인의 특성상 주주총회는 감독이사를 먼저 선임하고 감독이사가 집행이사를 선임하는 감시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국제화와 개방화로 인해 최근 독일에서도 자본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면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로 차츰 전환되고,주주가치에 기준한 의사결정체제가 유행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후 우리는 기업 금융 노동 정부의 부문별 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고,그 중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예컨대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는 주주와 경영자 또는 대주주와 소액주주간 합리적 관계 설정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 금융 노동 정부간 총체적 관계설정,즉 경제지배구조 내지 국가지배구조에 대한 논의나 합의는 별로 없었던 듯하다. 특히 자본과 노동의 상호관계,그 사이에서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할 때인 듯하다. 맹목적 온정주의를 토대로 한 약자의 과잉보호와 독점세력화 방치,자기 부처와 유관한 특정 국민계층에만 집중된 관심과 보호 등은 글로벌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정부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기준으로 보편타당한 원칙과 법규를 마련,존중하고 또한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조되는 경제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목소리 큰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의 우위에서 피해를 주거나 그 책임에 대한 경제적 또는 사회적 처벌이 없는 국가는 희망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에 최고의 경영리스크는 금융시장불안이 아니라 노동시장불안이라는 점은 신중하게 고려할 대목이다. hjj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