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실망하는 국민 늘어간다..洪準亨 <서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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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심상치 않다.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경련 등 경제5단체가 "투자를 중단하고,회사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비명을 지르자,노동계에선 재계를 향해 "막가자는 것이냐"며 으름장을 놓는다.
정부는 노동계의 파업이 잇따르자 불법파업과 태업,폭력행위 주도자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며 경고를 반복하고 있지만,잘 먹히지 않는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쿠데타가 나도 몇번 났을 상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정부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던 바다.
노동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상투적 주문도 새삼 되뇔 필요가 없다.
노무현정부 출범 당시 희망적 기대를 가졌던 국민들이 하나 둘 실망의 그늘로 옮겨간다.
개혁이 실종됐다며 지지층조차 등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경제회생을 위한 정책들도 함량 미달로 효험을 내지 못하거나 실기하기 일쑤다.
쉴새 없이 터지는 분규를 수습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언제 나라의 진운을 개척할 정책 구상을 할 수 있겠는가.
국정과제들은 대부분 아직도 준비 중이고,그 추진체계 역시 이런 저런 위원회들이 서로 뒤엉켜 난맥상을 보인다.
한창 일에 착수하려는 정부로서는 억울한 사정도 적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난국은 사회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다.
아직 희망을 놓을 때는 아니지만,이쯤 되면 정부도 허심탄회하게 쓴소리를 들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첫째,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갖고 있는 불안과 우려의 '근원'을 인식해야 한다.
정부의 사태 인식과 일반 대중의 그것과는 분명 뚜렷한 차이가 있다.
최근의 조흥은행 사태만 해도 정부는 법과 원칙을 지켰다고 하지만,시장과 국민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둘째,정부의 언론에 대한 관계에 문제가 많다.
언론과의 관계에 긴장을 주문한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 긴장이 언론과의 졸전으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 것이 문제다.
대통령은 "언론만 없으면 모든 것이 잘 돼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언론이란 으레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게 마련이다.
정부는 시민사회와 함께 산처럼 묵묵히 언론개혁의 대도를 걸으면 된다.
끝으로,정부는 모든 면에서 좀 더 프로다워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하고 또 몸소 실천해온 탈권위의 행태는 신선했다.
사실 보통사람의 솔직함이 권력의 이미지를 바꿔 놓은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진심의 정치'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더 스마트해져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모니터링하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의 이미지를 조율해 나가야 한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부 전반에 걸친 이미지 조율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도 원칙과 힘에 의한 협상의 맥락에서 재고돼야 한다.
정부가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니까,노사 당사자 간의 대화는 하지 않고,모두 정부와 직접 대화를 하고자 한다.
파업 등 실력행사의 무기를 내보이면서 협상을 하다가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행동에 나서는 상대방에 비해,정부는 협상의 무기와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경우 노동계는 정부의 카드를 다 읽고 있었다.
정부가 아니라 기업들이 옹호해 마지않을 지경이 된 '법과 원칙'이란 무엇인가.
또 협상용으로 평가절하된 '공권력 행사'란 무엇인가.
협상은 어디까지나 협상이다.
협상력의 손상이 용납돼선 안된다.
나라와 국민경제의 약점을 쥐고 흔들다 못이기는 체 협상 테이블에 앉은 노조의 위용에 비해,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한 당국자들의 표정은 안스럽기조차 하다.
이러한 방식의 대화와 타협에서 원하는 바를 성취한 선례가 형평의 논리를 지렛대 삼아 또 다른 선례를 낳으니 파업과 분규가 끊이질 않는 것이다.
노무현정부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냉랭하다.
국민도 불안해 하는 쪽이 훨씬 더 많다.
국민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