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착하게 살아라'는 어버이 말씀 이외에 따로 정한 가훈 없이도 잘 살아간다. 모세가 시내 산(山)정상에서 받았다는 십계명은 좀 길지만 이교도인 귀에도 그리 거슬리지 않는 바른 삶의 길잡이를 담고 있다. 철의 장막 붕괴 이전 서구로 망명한 체코 경제학자 오타 시크(Ota Sik)의 십계명을 전해듣고 필자는 그 비통함과 처절함에 마음속으로 오열한 적 있다. 당시 한국은 서슬 퍼렇던 군사 권위주의 시대였기에 더욱 공감이 컸다. 소개하면 이러하다. ⑴공산국 국민으로 태어나지 마라. ⑵불행하게도 태어났다면 생각하지 마라.⑶생각했어도 말하지 마라.⑷말했대도 글로 남기지 마라.⑸글을 썼다면 서명하지 마라.⑹서명했다면 남의 것이라 우겨라.⑺우기기 어려우면 미친 척하라.⑻미친 짓이 들통나면 서구로 탈출하라.⑼탈출하다 잡히면 공산당 입당지원하라.⑽모든 것이 수포로 끝나면 자살하라.오래 전 일이라 한두개 잘못된 대목도 있을 법하다. 북한 주민의 굶주린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 우리는 자녀교육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대중매체가 경박함과 흥미로움만을 부추기는 오락 프로그램을,인터넷과 휴대폰은 게임과 포르노를,전교조는 특정 이념교육을 가지고 청소년 마음을 노략질한다. 만일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바란다면 한때 유행했던 쌍기역자 돌림(깡,끼 등)을 가르쳐 악바리로 키워야 한다. 그렇게 키워 출세가도를 달리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십계명은 무엇인가. ⑴시골 대도시에 태어나라(요즘 유행하는 해외출산은 바보짓이다).⑵불행하게도 수도권에 태어났다면 시골 고등학교를 다녀 연고지를 확보하라.⑶대학은 안가도 좋지만 입학했다면 공부는 뒷전,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라.⑷간신히 졸업했다면 일반 직장은 피하고 재야운동권에 합류하라(정치활동이 가장 수지맞는 사업이다).⑸재야투쟁을 할랍시면 큰 집에 다녀올 만큼 극렬하게 투쟁하라.⑹그 경력으로 정계입문 목표를 향해 인터넷에 클릭하고 팬클럽 사이트를 열어라.⑺대권에 도전하라.선거유세 중에는 사실유무와 관계없이 상대방을 의혹투성이로 몰아붙여라.⑻집권에 실패하면 재수·3수 재도전하는 끈기를 보여 동정표를 얻어라.⑼집권에 성공하면,정권이름 앞에 '문민' '국민' 등 수식어를 붙이되 소수의 측근 이외 다수를 외면하라.'개혁'기치를 앞세워 추종세력 진출의 길을 터 의리있음을 보여라.무소불위 권한을 휘둘러 국민 다수와 언론도 굴종시켜라.⑽퇴임 후 은행예금 잔고 30만원 정도만 남기고 수뢰자산 몸체를 은닉하라.집권 중 의혹은 '통치행위'였음을 주장하라. 이상은 참으로 씁쓸한 십계명이 아닐 수 없다. 다행하게도 대다수 국민들은 생산적인 직장을 선택한다. 여기에도 직장인 십계명이 있을 수 있다. ⑴규모가 큰 직장(공기업 대기업 은행 등)을 골라 입사하라.⑵입사 첫날부터 자신이 직장의 주인임을 의식화하라.⑶노동조합에 가입하고,철저히 이념무장하라.⑷빈번한 삭발의례와 머리띠 두르기에 편리하게 헤어스타일을 짧게 하라.⑸경영진에게 고자세를 취하라.실정법에 기죽지 말고 싸워야 쟁취하는 이득이 크다. 회사 돈으로 노조활동을 하라.간부는 최고경영진에 준하는 수당·사무실·차량·비서 등을 요구해 귀족으로 군림하라.⑹주주는 이윤을 착취하는 벌레로 간주하라.⑺고객은 봉이다. 파업사태의 불편을 참아주는 것이 그들의 기본예절이다. ⑻노사분쟁을 빈번하게,상호연계해 전개하라.⑼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라.지지후보가 당선되면,공약위반으로 몰아세워 밀면 밀리는 정부로 길들여라.⑽분규로 직장폐쇄돼도 이름있는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자에게는 정치입문의 길이 열려있음에 안심하라. 내용을 약간 손질하면 연예인들의 십계명(에이전트 관계,선거철 정치인 돕기,모든 게 '내 마음이다'는 오만함 포함)도,고등고시 출신자들의 십계명(권력의 시녀 역할,재계와의 결탁 포함)도 될 수 있다. 이런 캐리커처가 그럴 듯하게 들리면 병든 사회다. 정부는 한국을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로 만들겠다고 한다. 특별검사의 대북송금수사 중단과 6,7월 밀집된 파업예고를 보고 '중심'국가는커녕 '주변'국가로 추락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pjkim@ccs.sogang.ac.kr